[잠깐만요!] 9년간 방치된 국보급 '훈민정음 상주본'

    입력 : 2017.05.08 03:04

    안동=권광순 기자
    안동=권광순 기자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고서적상 배익기(54)씨는 지난달 12일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투표에 참가한 9만8488명 중 465표를 얻어 낙선했다. "당선되면 실제 상주본을 공개하겠다"던 공약도 지킬 수 없게 됐다.

    선거에 앞선 지난달 9일 배씨는 국보(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본)과 같은 판본인 상주본 한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선거에 떨어지고 나선 "문화재청이 내 상주본을 장물(贓物)로 취급하면서 강제로 소유권을 빼앗으려 했던 사연을 보도해 주면 상주본을 공개하겠다"고 필자를 비롯한 기자들에게 제안했다. 배씨는 예전에 "대기업에서 나에게 거액을 주면 상주본을 내놓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국보급 유산을 볼모로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으로 들렸다.

    배씨는 2008년 "집을 수리하다 발견했다"며 상주본을 처음 공개했다. 그런데 골동품 판매업자 조모씨가 '배씨가 책을 훔쳐갔다'며 그를 고발했다. 법원은 조씨의 소유권만 인정하고, 배씨의 절도 혐의에 대해선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 과정에서 1년 복역을 했던 배씨는 풀려난 뒤엔 상주본 보관 장소를 함구(緘口)하고 있다.

    조씨는 2012년 타계하기 전 상주본을 서류상으로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문화재청은 이를 근거로 작년 12월 법원으로부터 상주본이 국가 소유임을 인정받은 뒤 3차례에 걸쳐 배씨에게 인도 요청을 했다. 배씨가 계속 버티면 이달 안에 문화재 은닉 혐의로 고발하고, 강제 집행을 통해 상주본을 국가에 귀속시킬 방침이었다.

    지만 배씨는 "문화재청은 반환 청구를 할 권한이 없다"면서 지난달 25일 대구지법 상주지원에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하며 맞불을 놨다. 또 다른 법정 다툼이 시작되면서 문화재청은 법원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또 기다려야 할 처지다. 소장자와 정부의 지루한 줄다리기 탓에 국보급 문화재가 적절한 보존·관리 조치도 없이 9년 동안이나 방치되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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