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편지] 오래 사는 것이 미안하지 않은 나라를

  • 김지은 굿모닝복지센터 책임연구원·사회복지사

    입력 : 2017.05.05 03:11

    김지은 굿모닝복지센터 책임연구원·사회복지사
    김지은 굿모닝복지센터 책임연구원·사회복지사
    서울의 민간 재가복지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2008년부터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에 따라 치매나 뇌혈관 문제 등 노인성 질환을 앓는 어르신 댁을 요양보호사들이 찾아가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저도 20명가량을 담당하는데, 매달 한 번 댁으로 가서 신체, 질병, 인지, 영양, 의사소통 상태를 체크하고 보호자와 요양보호사들의 의견을 듣습니다. 어르신 20여명 중 대부분이 할머니입니다.

    서울에 사는 87세 할머니는 1남 4녀가 있는데 서울에만 1남 2녀가 삽니다. 하지만 셋 모두 형편이 어려워 줄곧 모실 처지가 아니어서 한 달씩 번갈아가며 모십니다. 신림동 작은딸네서 한 달, 그 부근 아들네서 한 달, 사당동 큰딸네에서 한 달, 이런 식입니다. 난청이 심해 큰 소리로 말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이가 없는데 틀니를 못해 늘 소화 장애에 시달립니다. 작년 가을 화장실에서 넘어진 후로는 걷지도 못합니다. 치매와 시공간 감지력 저하로 밤과 낮 구분이 안 돼 한밤에 기어가 이 방 저 방 문을 여니 자식과 손주들 모두 힘들어합니다. 제가 가면 "왜 아직까지 사는지 모르겠다"며 "하지만 병원(요양원)은 안 간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요양원에 보내질지 모른다는, 즉 집에서 내쳐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겁니다. 요양원 입소는 당사자들이 극력 꺼리기도 하지만 국공립은 대기자가 많아 '하늘의 별 따기'이고 민간 역시 자리가 비어야 합니다. 대상 어르신의 수는 급격히 늘어나는데 시설 자체가 크게 부족합니다.

    /조선일보 DB
    평택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 하는 곳에 홀로 사는 90세 할머니가 계십니다. 너무 외져서 요양보호사들도 맡기를 꺼립니다. 지하 창고를 개조해 환기가 잘 안 되는 악취 심한 방에 삽니다. 시력이 나쁜데도 불을 켜면 눈물이 나서 사실상 암흑 속에서 지내다시피 합니다. 제가 돌아갈 때마다 "왜 벌써 가려느냐"며 붙잡으십니다. 저는 화재라도 나면 어쩌나 싶어 늘 불안합니다. 이분도 자녀는 많지만 전국에 흩어져 있고, 서울·수도권에 사는 자녀는 다들 살기가 어려워 함께 지낼 여건이 아닙니다. 구리에서 혼자 사는 90세 할머니는 생활 형편은 훨씬 좋습니다. 하지만 그분도 저만 보면 "나보다 나이 먹은 사람도 있느냐"며 물어보시는데 제가 "그럼요. 많이 계셔요"라고 답해야 안심하십니다.

    어르신들이 왜 오래 사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나. 왜 자녀들 힘들게 만든다며 죄의식을 갖고, 내쳐질까 봐 두려워해야 하나. 이분들을 대할 때마다 우리의 내일을 미리 보는 것 같아 서글프고 불안해집니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릅니다. 그리고 노인 빈곤율은 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라고 합니다. 한편 불황과 청년 실업 문제는 개선되지 않으니 사회가 어르신을 모실 능력을 점점 더 상실해가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리의 부모인 어르신을 모시는 문제는 이제 가족만이 감당할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끼곤 합니다. 어르신이 오래 사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나라, 자녀에게 피해를 준다며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어야지요. 이제부터라도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세워 실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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