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 13점으로 본 경운궁의 변천사

    입력 : 2017.05.04 03:02

    국립고궁박물관 '현판' 특별전

    대안문 현판(위). 구한말 경운궁 ‘대안문’을 나서는 어가(御駕) 행렬을 찍은 사진.
    대안문 현판(위). 구한말 경운궁 ‘대안문’을 나서는 어가(御駕) 행렬을 찍은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경운궁 대안문 앞에서 볼까." 요즘은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만나"라고 말하지만 1900년으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말해야 맞는다.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연수)이 '현판으로 보는 대한제국 황궁, 경운궁' 전시를 열고 있다. 경운궁(현 덕수궁)의 문과 전각에 걸었던 현판 13점을 통해 대한제국 첫 황궁 경운궁의 변천사를 살폈다. 1906년 대한문(大漢門)으로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 자리를 지켰던 대안문(大安門) 현판, 본래 경운궁의 정문 역할을 했다가 증축 과정에서 사라진 인화문(仁化門) 현판 실물을 일반에 처음 공개했다. 피나무로 만든 두 현판은 좌우 길이가 3m를 훌쩍 넘긴다.

    고종은 1897년 아관파천을 마치고 경운궁으로 돌아와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그러나 1904년 대화재, 1905년 을사늑약 체결, 1907년 고종의 퇴위, 1908년 순종의 창덕궁 이어(移御·임금이 거처하는 곳을 옮김)가 이어진다. 황궁이 되면서 경운궁 곳곳을 증축했지만 이후로는 일제의 공원화 계획, 해방 후 태평로 등 도로정비 사업으로 규모가 축소된 것. 문과 건물은 사라졌고 담장 위치도 바뀌었다.

    하지만 현판은 남았다. 이홍주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지금 인화문, 포덕문이 없어졌지만 현판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처럼 조선왕조는 건물은 철거하더라도 현판은 남겨뒀다"며 "당시 기록과 현판을 대조해 궁궐 건물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덕수궁 축소 및 공원화 과정에서 옮겨지거나 철거됐던 전각(殿閣) '구성헌' '흠문각' 등 건물 현판도 전시하고 있다. 14일까지. (02)3701-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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