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얼마 전 한 민간단체가 마련한 기업 CTO(최고기술책임자) 간담회 자리에서 "연구소의 경쟁자는 족발집"이라는 말이 나왔다. 한 중소기업 연구소장이 연구원의 잦은 이직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원들을 면담했는데, 그 자리에서 미래 계획을 물었더니 대뜸 "회사를 그만두고 족발집을 개업하는 게 꿈"이라고들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CTO들은 "우리 회사도 이상하게 연구원들 사기가 낮다. 사회적 보상이 낮다고 보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나라 연구 인력은 2015년 말 기준으로 46만3000여명에 이른다. 경제활동 인구 1000명당 연구원 수는 13.2명으로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이나 일본, 중국보다 앞선다. 물적 자원이 빈약한 나라에서 이만한 경제 발전을 이룬 배경에는 연구개발(R&D)에 인생을 바친 연구원들이 있었다. 특히 국내 연구 인력 중 열에 일곱을 차지하는 기업 연구원들의 공이 컸다.

하지만 최근 연구원들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2015년 퇴직한 기업 연구원 중 입사 1년 이내 퇴사자가 41.7%에 이른다. 젊은 연구원이 줄어들다 보니 연구원의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50세 이상 연구원 비중이 2000년 1.8%에서 2015년 7.9%로 급증했다. 특히 기업 연구 인력의 절반 이상을 보유한 중소기업 상황이 더 나쁘다. 중소기업 연구소 대부분이 수도권 밖에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기흥 마지노선'에 이어 '연구소 남방한계는 판교'라는 말까지 나왔다. 기업이 연구원을 구하려면 최소한 연구소가 서울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경기도 기흥 이북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게 어제 같은데, 이제는 성남의 판교 밸리 이남에서는 연구원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업 연구소들을 다 서울 한복판에 둘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국가 경쟁력이 R&D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연구 인력조차 구하기 어려운 지방 중소기업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데 많은 이가 동의한다.

기업들이 정부에 연구원 급여를 대신 올려주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CTO들을 만나보면 한때 우리 정부가 시행했던 것처럼 지방 중소기업 연구원의 소득공제를 확대하거나, 어린이집 추첨에서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 작지만 피부에 와 닿는 혜택을 제공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실제 장기 근속하는 연구원이 많은 지방 중소기업들은 금리가 좋은 금융 상품이나 정부의 지원 제도를 찾아 직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회사들이었다. 이런 일을 정부가 더 확대해달라는 것이다.

최근 각 정당의 대선 캠프가 내놓은 과학기술 정책을 보면 정부 연구소 연구원들의 정년을 IMF 경제위기 이전의 65세로 복귀시키거나, 여성 연구원이나 대학원생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내용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중소기업 연구원 지원 정책은 찾기 어렵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창업을 지원하겠다는 후보들은 있지만, 임차료가 저렴한 지방에서도 양질의 연구 인력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후보는 보지 못했다. 이제 산업의 경계도 사라지고 정부와 민간의 구분도 의미가 없어지는 세상인데, 대선 후보들의 정책은 여전히 과거 기준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