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운동복 입고 셀카 찍고… 하프마라톤, 여성의 놀이가 되다

    입력 : 2017.05.01 03:03

    [참가자 1만여명중 24%가 여성, 10㎞ 코스는 35% 달해]

    '다리 굵어진다' 등 오해 사라지며 주요 대회 여성비율 2~3배 늘어
    여성만 가입 동호회도 속속 증가 "운동한 뒤 몸매 더 탄탄해졌죠"

    2017 서울하프마라톤이 열린 30일 오전 8시 출발 지점인 광화문광장. 참가자 틈으로 주황, 노랑, 초록 등 형형색색의 복장을 한 젊은 여성들의 무리가 곳곳에 섞여 있었다. 형광색 헤어밴드와 운동화는 기본. 하체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나 짧은 반바지는 패션쇼장을 방불케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여성 마라톤 인구가 급격하게 늘며 벌어진 풍경이다.

    마라톤은 이제 '아재(아저씨)들의 스포츠'가 아니다. 주로(走路)를 점령한 여성 러너들 덕분이다. 달리기를 즐기는 20·30대 여성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최근 마라톤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20·30대 여성들만의 러닝 동호회‘비비드 레이디’회원들(위)과‘필 레이디’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 출발 직전 점프하며 완주를 다짐하는 모습.
    마라톤은‘아재들의 스포츠’가 아니다. 30일 열린 2017 서울하프마라톤은 건강미를 과시하는 젊은 여성들로 북적였다. 사진은 20·30대 여성들만의 러닝 동호회‘비비드 레이디’회원들(위)과‘필 레이디’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 출발 직전 점프하며 완주를 다짐하는 모습. /김지호 기자
    이번 서울하프마라톤에서도 많은 젊은 여성이 마라톤을 '패션'이자 '놀이'처럼 즐기고 있었다. 주로를 따라가며 이들을 관찰해보니 마치 '런웨이를 뛰어가는 패션모델'처럼 보였다. 상당수가 요즘 유행인 '미러 선글라스(렌즈 바깥쪽이 거울처럼 보이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눈가엔 또렷한 아이라인이, 입가엔 붉은 립스틱이 그려진 여성도 많았다. 혹여나 화장이 지워질세라 달리던 중 수시로 손거울을 쳐다보는 여성도 보였다.

    출발선과 결승선에선 삼삼오오 모여 사진 찍는 젊은이들이 넘쳤다. 10㎞ 코스를 1시간 10분여 만에 통과한 20대 여성 동호인 몇몇은 서로 기념사진을 찍어주느라 결승선이 있는 여의도공원에서 1시간을 더 보냈다. 서울하프마라톤 사무국 관계자는 "10년 전만 해도 국내 마라톤 대회 여성 참가자 비율이 10%도 되지 않았다"며 "불과 몇 년 사이에 2~3배 늘었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 참가자 1만150명 가운데 여성 비율은 약 24%(2421명)로 4명 중 1명꼴이다. 10㎞ 참가자만 따지면 여성 비율이 35%에 달한다.

    예쁜 운동복 입고 셀카 찍고… 하프마라톤, 여성의 놀이가 되다
    하프코스에 출전한 여성 김성화(23)씨는 "여성들도 순수하게 마라톤 자체를 좋아한다"면서도 "예쁜 운동복을 갖춰 입고 셀카를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게 하나의 문화가 된 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인스타그램엔 '서울하프마라톤'이라는 해시태그(특정 주제에 대한 글임을 알리는 '#' 표시)가 달린 사진만 2000장 넘게 올라왔다. 마라톤 기획사 '월드21HQ' 주상은 대표는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달리기가 '자기를 관리하는 여성' '걸 크러시(여성이 다른 여성을 동경하고 흠모하는 감정)'의 상징처럼 됐다"고 했다.

    그간 마라톤은 여성들이 기피하는 운동 가운데 하나였다. '오래 달리면 피부가 빨리 늙는다'거나 '다리가 굵어진다'는 편견 탓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아끼는 건강한 여성'들이 대거 마라톤에 뛰어들면서 이런 편견도 바뀌고 있다. 아예 여성만 입회 자격이 있는 동호회도 속속 생겨난다. 여성 러너 30여명으로 구성된 '필 레이디'의 멤버 이정경(27)씨는 "남자들 신경 안 쓰고 달리는 것이 더 편하다"고 했다. 20·30대 여성 동호회인 '비비드 레이디'를 2015년 조직한 김보라(30)씨는 "마라톤을 시작한 뒤로 몸매가 더 탄탄해졌다"며 "달리는 동안에는 온전히 나의 호흡과 팔·다리 움직임에만 집중할 수 있어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것 같다"고 했다. 이 동호회 멤버 김현배(29)씨는 "남자들이 섞인 동호회는 대회 후 주로 술을 마시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며 "우리 모임이 더 건강한 것 아니냐"면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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