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곡·리듬까지 간섭한 北… 우리가 그 장벽에 균열 냈죠"

입력 2017.05.01 03:01

[평양 공연 다큐 '리베라시옹…'주역 록밴드 '라이바흐'와 제작진 인터뷰]

北 초청받아 첫 공연 열기까지 선곡 검열·통행 제한당하는 등 당국과 협상하는 과정도 담겨
"하품하고 조는 관객도 있었지만 젊은이들은 새로운 음악 좋아해"

"헬로 평양, 록을 즐길 준비 됐어?"(Hello, Pyongyang: Are You Ready to Rock?·뉴욕타임스)

2015년 8월, 슬로베니아 출신 실험적인 록 밴드 '라이바흐'가 평양에서 한 첫 공연을 외신들은 '사건'처럼 보도했다. 북한 당국의 공식 초청을 받아 평양 시민 앞에서 공연한 최초의 서구 록 밴드. 이들은 선곡부터 리듬과 가사, 무대 배경에 깔리는 영상까지 검열하는 북한 당국과 줄다리기를 벌여 마침내 첫 공연을 열기까지의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화 '리베라시옹 데이'(광복절의 북한식 표현 '해방절'을 의미)로 만들었다.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으로 영화 상영과 공연을 위해 온 이들을 지난 29일 전주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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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 거리' 한 카페, '평양 스타일로 자세를 잡아 보라'고 했더니 이들은 의자에 앉은 채 무뚝뚝한 표정에 차렷 자세를 취하며 익살을 피웠다. 평양에서 공연한 첫 서구 록밴드 '라이바흐'의 멤버들과 다큐 '리베라시옹 데이' 제작진. /김영근 기자
영화엔 공연 검열과 통행 제한 등 세세하게 간섭하는 북한 당국자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멀리 건물 위 김일성 부자(父子) 초상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때 구도와 위치까지 정해준다. 모르텐 트라비크 감독은 "'조종(manipulation)'이란 단어를 머리에 떠올리지 못할 뿐, 북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이 조종받으며 산다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이리 가고 저리 가라고, 매스게임을 하고 반미 구호를 외치라고 지시받고, 모두가 거기에 따르죠. 검열관들은 심지어 우리가 검열 과정을 찍는 걸 좋아했어요. 자기들이 할 일을 잘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유럽에서 '라이바흐'는 나치나 공산당이 연상되는 제복 차림 퍼포먼스를 하는 괴짜 밴드라는 인상이 강하다. 서방 언론에선 논란과 비난도 많았다. 트라비크는 "극우파나 공산주의자라는 비난도 듣지만, 전적으로 오해다. 퍼포먼스를 통해 정치 조작의 이면을 뒤집어 보여줄 뿐"이라고 했다. "제복은 권력의 논리가 깃든 '트로이의 목마'와 같아요. 독재 권력이 시민을 통제하고 정치를 조작하는 방식을 드러내니까요. 우리는 '독재 타도' '민주 쟁취' 같은 구호를 외치는 게 아니라, 그저 보여줌으로써 청중 스스로 의심하고 질문하게 하려는 겁니다." 평양에서도 이들은 인민복을 입고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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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주체사상탑 앞에서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포즈를 취한 록밴드‘라이바흐’멤버들. /라이바흐 밴드
영화는 의외로 재미있다. 록 그룹 공연에 열광하는 팬들을 김일성 부자와 만나 울부짖는 북한 군인과 교차 편집하는 등 재치 넘치는 장면이 가득하다. 반면 영화 속 평양 공연은 얌전하다. 파격적 화면도, 과격한 무대 퍼포먼스도 없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아리랑' 같은 노래를 재해석해 공연하는 동안, 평양 관객들은 하품하거나 졸기도 한다. 밴드 멤버들은 "서로 낯설었다. 무대와 관객 사이에 뭔가와 충돌하는 긴장이 흘러 흥미로웠다"고 했다. "괴성이나 사인 요청을 기대하진 않았어요. 그래도 젊은이들은 '새로운 음악을 들었다'며 좋아했어요. 50~60년대 미국 로큰롤을 처음 접한 유럽의 반응도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기념물 같았고"(루카), "사람들이 직장이나 연애, 친구 관계처럼 우리와 같은 걸 고민하며 사는 게 신기했던"(여성 보컬 미나) 평양. 영화 속에서 이들은 "어떤 튼튼한 장벽에도 새로운 정신이 스며들 틈새는 있다"고 말한다. 평양에서도 그런 틈새를 발견했을까. "우리 공연 자체가 그런 틈새였을지도 몰라요. 우리 노래에서 평양 사람들이 느꼈던 혼란스러운 감정이 튼튼한 장벽에 생긴 균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루카와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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