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의 화풍으로 그려낸 서커스, 낯설지만 빠져드네

    입력 : 2017.05.01 03:02

    [스위스 초현실 서커스 '라 베리타']

    소치올림픽 연출한 파스카 작품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 그림 배경, 미술·춤·연극 합친 아트 서커스

    코뿔소 머리·민들레 홀씨 등 그림 속 소재도 소품으로 등장

    올림픽 무대를 만드는 사람은 당대 최고의 스타 연출가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은 영국을 대표하는 대니 보일이,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의 장이머우 감독이 지휘했다.

    스위스 출신 다니엘 핀지 파스카(53)는 이런 세계적 무대를 세 번이나 연출했다.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 폐막식을 비롯해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과 소치 동계패럴림픽 개막식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미 '태양의 서커스' '서크 엘루아즈' 등 캐나다를 대표하는 서커스 극단에서 연출을 맡아 서커스가 한물간 장르가 아니라는 걸 과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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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채화 같은 조명이‘라 베리타’무대를 가득 메우면 공연자들은 곡예와 연주, 노래를 하며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캔버스를 연출한다. 다니엘 핀지 파스카는“악몽이 섞인 듯한 달리의 작품을 샤갈풍의 경쾌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며 웃었다. /LG아트센터
    지난 27~30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그가 선보인 '라 베리타'('진실'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역시 서커스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2013년 캐나다 초연 이래 미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세계 20개국에서 400회 이상 공연되며 3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서울 공연도 일찌감치 매진됐다.

    '라 베리타'는 탄생 스토리부터 흥미진진하다. 70년 동안 '존재'만 알려졌던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작품 '광란의 트리스탄'이 공연을 통해 처음 대중에게 공개됐기 때문이다. 194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무대 장막으로 제작됐던 달리의 작품(9m×15m)은 개인 컬렉터의 손에 보관돼 있다가 "다시 무대에 올려달라"는 컬렉터의 의뢰로 핀지 파스카가 '라 베리타'로 탄생시켰다.

    이번 공연은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의 작품처럼,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달리 작품 '광란의 트리스탄'을 경매에 부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공연은 줄거리보다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꾸며진 무대와 볼거리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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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자들이 달리의‘광란의 트리스탄’앞에 섰다. /LG아트센터
    하늘에서 코르크 마개가 꽃비처럼 떨어지는 무대. 나선형 틀에 매달린 배우가 곡예를 하고, 코뿔소 가면을 쓴 연주자가 앉은 피아노 위로 한 여성이 곡예를 하며 내려온다. 목각 인형과 짝을 이루는 남성의 묘기는 압도적이다. 몸을 거의 200도 이상 비틀어 어느 쪽이 가슴이고 등인지 헷갈리게 하는 '몸 뒤틀기' 공연으로 시각적 충격을 준다. 공연에 나선 11명은 2011년부터 '핀지 파스카 컴퍼니'에 속한 예술단원들. 핀지 파스카는 "아크로바틱은 혼자 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강하게 받쳐 주는 역할이 꼭 필요하고,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라고 말했다.

    달리의 그림에 등장하는 외다리 수레와 두 개의 붉은 창은 투우사와 목발 연기로 변용된다. 달리의 콧수염이 코뿔소에서 영감을 받았듯 작품 곳곳에 코뿔소 머리가 등장해 달리의 화신이 된다. 광대는 무대에서 "달리가 죽기 전 '트리스탄과 이졸데' 오페라를 들으며 사망했다"고 말한다. 핀지 파스카는 "달리의 생가(生家)도 직접 가보면서 그의 삶을 추적해 자갈을 모으듯 모자이크 형식으로 연출했다"고 말했다.

    핀지 파스카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연출하는 양정웅 연출가와 평창 패럴림픽을 연출하는 고선웅 연출가를 공연에 초청했다. 연출가 양정웅은 "강렬한 이미지로 연출한 시각적인 미학도 높이 평가하지만 인생의 고독과 외로움을 광대의 유머러스함을 곁들여 희극적으로 승화시킨 데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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