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노조, 社內 비정규직 노조와 결별

    입력 : 2017.04.29 03:12

    정규직·비정규직 공생 노조, 9년만에 파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 勞·勞 갈등의 골 깊어져

    - 4000명중 1049명 정규직 전환 합의
    비정규직들 "모두 해달라" 요구, 정규직 "차라리 결별이 낫겠다"

    - 노동계선 우려의 목소리
    "대기업 노조, 제 밥그릇만 지켜… 기득권 깨야 노동 양극화 해소"

    기아자동차 노조가 사내 비정규직 노조와 갈라서기로 결정했다. 지난해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둘러싸고 '노노(勞勞) 갈등'을 벌인 끝에 비정규직 노조와 결별을 선택한 것이다.

    기아차 노조는 27~28일 비정규직 노조를 분리하는 내용의 노조 규약 개정안에 대한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해 71.7%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앞으로 기아차 노조 가입 자격은 '기아차 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에서 '기아차주식회사에 근무하는 노동자'로 바뀐다. 비정규직으로 불리는 사내 하도급업체 소속 노동자는 기아차 노조에 가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아차 노조가 9년 만에 비정규직 노조와 결별하기로 결정한 것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둘러싸고 노노 갈등의 골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기아차 노조는 지난해 11월 4000여명의 비정규직 가운데 일단 1049명을 우선 특별 채용하기로 사측과 합의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조는 "노사 합의는 나머지 비정규직 조합원이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라는 것"이라며 집행부를 비판했고, 전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여러 차례 독자 파업을 벌였다.

    기아차 노조는 이에 대해 지난 11일 소식지에서 "(비정규직 노조가 노사 합의에 대해) '사기극 범죄 행위'로 표현했다"면서, '지도부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을 다했지만 현장 갈등은 오히려 확산돼 규약을 개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비정규직 노조가 사측이 받아들이기 힘든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며 강경 투쟁을 벌이자 정규직 노조원 사이에선 '이참에 노노 분열을 조장하는 비정규직 노조와 갈라서는 게 낫겠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고 말했다.

    기아자동차 노조는 최근 ‘압도적 가결’로 비정규직 노조를 분리하자는 내용을 담은 소식지를 연이어 발행했다. 기아차 노조는 27~28일 전체 조합원 3만2000여 명 가운데 비정규직 조합원을 분리하는 안건을 조합원 총투표에 부쳐 압도적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기아자동차 노조는 최근 ‘압도적 가결’로 비정규직 노조를 분리하자는 내용을 담은 소식지를 연이어 발행했다. 기아차 노조는 27~28일 전체 조합원 3만2000여 명 가운데 비정규직 조합원을 분리하는 안건을 조합원 총투표에 부쳐 압도적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연합뉴스

    기아차 노조는 비정규직의 연대를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2008년 비정규직 노조를 받아들였다. 국내 완성차 업체 중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를 받아들인 것은 기아차가 유일했다. 현대자동차·한국GM 등 다른 완성차 업체는 그동안 노조 규약 개정안이 대의원대회에서 번번이 부결돼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가 같은 우산 아래 있었던 적이 없었다.

    노동계에선 비정규직 분리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기아차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까지 지난 24일 "비정규직 분리는 기아차 노조 역사에 오점이 될 것"이라며 총투표 중단을 촉구했고, 정의당도 지난 25일 "노동자 단결 정신에 기초해 하나의 조직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갈 것"을 호소했다.

    노동 전문가들은 이번 기아차 노조의 결정은 대기업 정규직이 사회적으로 더 약자인 비정규직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관심이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이정식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은 "노동 양극화 해소에 앞장서야 할 대기업 노조가 비정규직 보호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강자만 살아남는 '정글 자본주의'가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국내 대기업 노조는 겉으로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골몰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현대차·기아차 노조가 판매 대리점 소속 영업사원의 노조인 '전국자동차판매노동자연대노조'의 금속노조 가입에 반대하는 것도 이런 이중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형식상 자영업자인 대리점 영업사원은 직영점 영업사원과 비슷한 일을 하고 대리점을 통해 본사로부터 업무 지시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고정 임금을 받는 직영 사원과 달리 판매 실적에 따른 수수료만 받고, 4대 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다. 연대노조는 이런 차별 해소를 위해 금속노조 가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현대차·기아차 노조는 판매 과당 경쟁 우려 등을 이유로 연대노조의 금속노조 가입을 탐탁지 않아 하고 있다.

    전문가는 노동 양극화를 없애려면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 깨기가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현대차·기아차 노조의 전체 조합원은 약 8만명이며, 이 가운데 절반(4만명) 이상이 연봉 1억원 이상을 받는 것으로 추산된다. 현대차 노조는 고액 연봉 문제가 제기되면, "야근·특근 등 오랜 시간 근무한 것을 감안하면 연봉이 많은 것이 아니고, 성과급에 따라 연봉이 확 줄 수도 있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현대차 하도급업체에 근무하는 한 근로자는 "우리가 정규직보다 더 오래 일하면 일했지 적게 일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연봉은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5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완성차 업체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의 월평균 근로 시간은 거의 차이가 없지만, 협력업체의 월평균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을 조금 넘었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해외 대기업 노조는 양극화가 생기지 않도록 임금과 복지를 일부 양보한다"면서 "상위 5% 대기업 노조가 임금·복지를 독점하는 구조를 깨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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