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1시 서울 마포구 도화동 주민센터엔 '제19대 대통령 선거'란 글씨가 박힌 흰색 서류봉투 1000여 개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대통령 선거 공보물들이었다. 전날 오후 8시까지 공보물의 90%를 보냈는데도 아직 남은 양이 산더미였다. 도화동을 담당하는 집배원 한석희(38)씨가 자신이 맡은 1000여 통의 공보물을 오토바이 적재함에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집배원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주민센터에서 발송 준비해놓은 공보물을 정해진 시일 내에 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11일부터 선거일인 5월 9일까지 29일간은 우정사업본부가 정한 '선거우편물 특별 소통 기간'이다. 집배원들은 이 기간에 전국 유권자들에게 책자형 선거 공보물 2131만 통을 25일까지 배송하고 다음 달 1일까지는 투표 안내문 2131만 통을 보내야 한다. 사전투표용지까지 더하면 대선 전까지 총 4739만 통의 선거우편물이 배송된다. 이 기간 동안 전국 우체국은 비상근무에 돌입하고 상황대책반까지 꾸린다. 전국 1만2000여 명 집배원에겐 명절 대목 못지않게 바쁜 시기다.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에서 마포우체국 한석희 집배원과 기자가 제19대 대선 후보들의 공약집이 담긴 선거 공보물 봉투를 우편함에 집어넣고 있다. 선거 때마다 집배원 한 명당 500~1700통의 공보물 배송을 맡는다.

집배원 한씨와 함께 공보물 배달에 나섰다. 20~30개씩 묶여 있는 공보물들을 오토바이에 옮겨 싣는 것이 먼저였다. 주민센터 4층에서 1층에 세워진 오토바이 적재함으로 옮기는 단순 작업이었다. 10분이 채 안 돼 팔이 후들거렸다. 공보물 봉투 한 개당 무게는 250g. 사퇴한 후보 1명을 제외한 14명의 후보가 각각 만든 1~8장짜리 공보물 총 50장이 한 봉투에 들어있었다. 일반 우편물 요금은 25g 기준 330원이지만 1만 통 이상 발송할 때는 할인 혜택이 있어 공보물 1통당 발송료는 평균 900원이다. 세금 약 170억원이 쓰이는 셈이다.

이날 오후 5시까지 배달을 완료해야 한다는 한씨의 손이 바빠졌다. 마포구에는 17만 가구가 있으며 이를 140명의 집배원이 나눠 맡고 있다. 집배원이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 적재함에는 공보물 봉투를 최대 150통까지 실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집배원들은 많게는 스무 번까지 주민센터를 오가며 배달해야 한다. 워낙 수량이 많아 경차를 이용할 때도 있지만 골목길 배달을 하려면 90% 이상은 오토바이로 해결해야 한다.

오후 1시 20분쯤 한씨 오토바이가 도화현대홈타운 아파트 앞에 멈췄다. 내리자마자 한씨는 아파트 입구로 공보물을 한 아름 안고 들어갔다. 수백 개 우편함 앞에 선 한씨는 "아파트 2개 동 450가구 모든 우편함에 각 주소에 맞게 공보물을 꽂아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편함에 봉투 넣는 일이 어렵겠느냐 하는 생각은 일을 시작하자마자 사라졌다. 일반 우편물보다 두껍고 무거운 공보물을 꽂아넣으려니 좁은 우편함 입구에 봉투 끝이 자꾸 걸렸다. 힘을 줘서 쑤셔 넣자니 공보물이 찢어질까봐 걱정됐다. 아파트 각 호별 우편함 위치가 익숙하지 않아 주소에 맞는 우편함을 찾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게다가 공보물은 호수별로 정리돼 있지 않고 뒤죽박죽이었다. 주민센터마다 작업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일찍 끝나는 곳은 관할 주소지를 잘 아는 집배원들이 순서대로 배열한 뒤 배달을 하지만 대부분 그럴 여유가 없다고 했다.

한씨는 "잘못된 주소에 공보물을 꽂아넣지 않을까 하는 부담이 크다"고 했다. 이날도 기자가 공보물 3통을 엉뚱한 우편함에 넣었다가 한씨가 발견했다. 한씨는 또 다른 배달 사고가 있을까봐 기자가 넣었던 공보물들을 일일이 다시 확인했다. 결국 일을 두 번 하게 된 셈이었다. 한씨는 "선거 공보물이 잘못된 주소에 들어가면 큰일난다"고 말했다. 10년째 집배원으로 일하고 있는 한씨는 "공보물 배달을 5번째 하고 있지만 여전히 긴장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유권자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일인 만큼 오배달 사고 부담이 크고, 제대로 배달했는데 누군가 공보물을 훔쳐가거나 폐지업자가 들고 가는 경우도 생긴다고 했다.

선거 공보물 배송 특별 기간이라고 해서 일반 배송을 쉬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공보물 집중 배송 주간에는 직전 휴일을 반납하기도 한다. 토요일인 지난 22일에도 휴일을 반납하고 24일 배송 예정이었던 배달물을 미리 배송했다고 했다. 주민센터마다 작업 속도가 다른 데다 날씨에 따라 배송 작업이 더뎌질 수 있다는 점도 공보물 배송의 어려운 점이다.

일일이 우편함에 공보물을 넣은 지 2시간이 지나서야 아파트 2개 동 배송이 모두 끝났다. 한씨는 그제야 땀을 훔쳐냈다. 그는 "이렇게 배달한 공보물을 제대로 보지 않거나 심지어 뜯지도 않고 통째로 버려진 걸 보면 속상하고 허무하다"고 했다. 한씨는 "배송하다가 우편함 옆에 버려진 공보물을 보면 다시 우편함에 넣어 놓기도 한다"면서 "비싼 세금으로 배달되는 우편물인 만큼 꼼꼼히 잘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