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카시미 공주 "이집트에도 '달리' 있습니다"

    입력 : 2017.04.28 03:02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 展]

    국현·샤르자 공주 재단 협력

    1930~90년대 이집트 현대미술
    모더니즘, 비서구 시각으로 조명… 여성·빈곤 등 사회 비판적 작품

    "'초현실주의'라고 하면 달리나 마그리트의 그림을 떠올리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이 전시는 보여줍니다. 꿈처럼 괴이하고 몽환적인 풍경이 초현실주의라고 여기는 것 또한 서구식 교육이 만든 고정관념이죠."

    세계 미술 시장‘큰손’중 한 사람인 샤르자예술재단의 후르 알 카시미 공주.
    세계 미술 시장‘큰손’중 한 사람인 샤르자예술재단의 후르 알 카시미 공주. /박상훈 기자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28일 개막하는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은 편견을 깨는 전시다.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나 미라를 떠올리는 이들에게 전혀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전시는 이집트 문화부와 샤르자예술재단,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이 협력해 이뤄졌다. 개막을 앞두고 서울에 온 샤르자재단 후르 알 카시미(37) 공주는 "초현실주의 사조는 중동, 남미, 아시아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살바도르 달리만큼이나 위대한 작가들이 제3세계에도 있었다"고 말했다. 샤르자재단은 전시작 166점 중 32점의 소장품을 내놨다.

    히잡 대신 청재킷을 걸친 알 카시미 공주는 세계 미술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큰손'이다. 아랍에미리트(UAE) 토후국인 샤르자 국왕의 6남매 중 막내딸로, 런던 슬레이드 아트스쿨과 왕립예술대에서 공부했다. 화가이기도 한 그는 2003년부터 재단을 이끌며 샤르자 비엔날레를 중동의 대표적 미술 축제로 키워낸 실력자. 미술 전문지 '아트 리뷰'가 선정한 '예술계 파워 100인'에서 2013~2014년 연속 48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컬렉션의 첫째 기준이 "역사성"이라고 했다. "좋은 작품을 개인이 소장하면 일반 대중이 볼 기회가 줄어드니 전 세계를 발로 뛰며 작가와 유족들을 만납니다." 알 카시미 공주가 이번 전시의 주요 키워드를 짚었다.

    ◇여성·빈곤

    전시는 이집트 초현실주의가 태동한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작품을 아우른다. 알 카시미 공주는 "이집트 역사를 몰라도 그림 자체가 파워풀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서유럽 초현실주의와는 화풍이 사뭇 다르다. 예술이 사회를 바꾼다고 믿었던 이집트 작가들은 화폭에 사회 비판 요소를 가득 담은 독자적 세계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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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 초현실주의의 대표 화가였던 압둘하디 알자제르의‘시민합창단’(1951년 작). 일렬로 선 사람들 앞에 텅 빈 밥그릇이 놓여 있다. 이 그림을 전시한 뒤 작가가 당국에 구금됐을 만큼 이집트 초현실주의 작품은 사회 비판과 권력 저항의 요소를 담아냈다. /국립현대미술관
    여성 그림이 많은 건 그래서다. 여인은 미(美)의 대상이 아니라 가난과 억압의 상징이었다. 카밀 알텔미사니의 '앉아 있는 누드'는 대표적이다. 울고 있는 여인의 무릎에 커다란 못이 박혔다. 박주원 학예연구사는 "영국 식민 지배를 받던 이집트에서 가장 착취당한 건 여성이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 많은 여성이 매춘을 했고 고통받았다"고 설명했다. 싯디크의 '어머니들―평화의 행진'도 뭉클하다. 맨발의 여인들이 갓난아이를 안고 전진하는 풍경이다. 압둘하디 알자제르의 '시민합창단'은 알 카시미 공주가 "이번 전시에서 절대 놓쳐선 안 될 걸작"으로 꼽았다. 일렬로 선 남녀노소 앞에 텅 빈 밥그릇이 놓인 그림. 그 밑에 '신이여 보라. 이게 당신의 백성이다'라고 쓴 작가는 전시와 함께 구금됐다.

    ◇초록·고양이

    초록풍 그림이 많은 것도 눈길을 끈다. 피라미드 벽화의 전형적 구도를 보여주는 케말 유시프의 '귀족'은 초록색 피부를 지닌 남자의 옆모습이다. 알자제르의 '헌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여신(女神)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초록이고, 무르시의 '여인의 두상' 또한 초록색이다. 알 카시미 공주는 "현실엔 없는 초록 피부는 그 자체로 초현실주의를 뜻한다"고 했다.

    케말 유시프의‘귀족’(왼쪽·1940년대작).
    케말 유시프의‘귀족’(왼쪽·1940년대작). 신성을 상징하는 초록색 피부를 가진 남자의 형상이다. 오른쪽은 영국 식민지 체제하 여성들의 고통을 묘사한 카밀 알텔미사니의‘앉아 있는 누드’(1941년작). /국립현대미술관
    박주원 학예사는 "이집트 신화에서 초록은 신들의 색깔이었다"며 "작가들은 '무엇이 더 이집트적인가?'를 고민하며 자신들의 전설과 민담을 모티프로 활용했다"고 전했다. 고양이, 수탉 같은 동물들이 그림에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일 강 사람들의 일상, 그들이 영적인 동물로 여겼던 고양이와 새를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고대 신화를 현대로 계승한 작가들의 내공을 만끽할 수 있다.

    한국 단색화를 좋아한다는 알 카시미 공주는 "임흥순, 구동희 등 샤르자 비엔날레를 통해 한국 작가들을 세계에 소개하게 돼 보람을 느낀다"며 활짝 웃었다. 전시는 7월 30일까지. (02)2022-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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