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귀로 읽는 소설

입력 2017.04.26 03:05 | 수정 2017.04.26 11:11

노승영·번역가·격월간 '악스트' 편집위원
노승영·번역가·격월간 '악스트' 편집위원
목요일 저녁. 책꽂이로 둘러싸인 서너 평 남짓한 공간에 의자가 빼곡히 놓여 있다. 서른 남은 명이 커피나 생맥주를 들고 자리에 앉는다. 8시 정각이 되자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쏠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 책과 책 사이의 공간을 채우는 그녀의 음성. "K의 술집에서는 세 종류의 위스키만을 팔았다. 싱글몰트로만…"

이곳은 지하철 3호선 백석역 근처에 자리 잡은 작은 책방 미스터버티고다. 한 달에 한 번씩 셋째 주 목요일마다 은희경 작가의 낭독회가 열린다. 오늘 낭독한 글은 소설집 '중국식 룰렛'(2016)의 표제작인 '중국식 룰렛'이다. 단편소설 하나를 작가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는 이 행사가 벌써 5회째다.

들으면서 읽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마치 귓구멍을 통해 들어온 글자들이 뇌를 거쳐 눈동자에서 발사되어 종이에 새겨지는 느낌이랄까. 아니, 내가 활자를 노려보면 녀석들이 소리로 변신하여 종이 위로 튀어 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문자화되면서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난 언어가 낭독을 통해 음성화되면서 다시금 시간의 축 위에 존재하게 된다. 소설 속 사건과 소설 밖 사건이 동시에 진행된다. 어쩌면 이것이 평행우주?

칼럼 관련 일러스트
소설가는 소설로만 말한다지만 텍스트 바깥의 얘기를 듣는 것이 쏠쏠할 때도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터넷 동호회 '차이니스 룰렛'이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라 게이클럽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낭독 중간의 해설을 듣고 나서였다. '회원은 모두 남자였다. (중략)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는 문장에서 감을 잡았어야 했는데.

묵독은 개인적 체험이지만 낭독은 공동의 체험이다. 우리는 재미있는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렸고 야한 장면에서 숨을 죽였다. '(…) 죽음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거기에 천사의 몫도 있을 것이다. 이왕이면 그 영혼이 싱글 몰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문장을 듣고서 시계를 보니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이 세상에는 체험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하나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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