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왕 빌게이츠' 한국서도 나올수 있게 물꼬 텄다

    입력 : 2017.04.21 03:10

    [대법원, '주식기부 과세' 명확한 기준 첫 제시]

    - 선의의 기부는 살리고
    편법 상속을 막기위한 법이 장학사업 발목잡아선 안돼

    - 악용은 막아야
    다른 법인 지배위해 재단 설립, 이사 선임 등 영향력 행사땐 과세

    황필상씨 사건 일지표
    대법원은 20일 모교인 아주대에 사실상 전 재산인 수원교차로 주식 지분 90% (기부 당시 평가액 180억원)를 기부했다가 기부액보다 더 많은 세금을 물게 된 황필상(70)씨 사건 판결을 통해 '주식 기부 과세(課稅)'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공익 법인(재단)에 회사 주식을 일정량 기부한 사람이 재단의 이사 선임이나 정관 작성 등 재단 설립에 개입하고 사실상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경우로 판단될 때만 해당 주식 기부 행위에 증여세를 매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대법원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고, 대법관 11명(1명 공석)이 참여한 대법원의 최고 재판 기구인 전원 합의체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욱 무게가 실린다는 것이 법조계 분석이다. 양 대법원장을 비롯한 9명이 '세금 부과 부당' 쪽에 섰고, '세금 부과는 정당하다'는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은 3명에 불과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공익 재단에 현금이 아닌 회사 주식을 기부할 때는 전체 발행 주식의 5%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세금을 매기도록 한 상속·증여세법이 장학·구호 사업 등을 위한 순수한 기부까지 봉쇄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대법관들의 공감대에서 나온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세무 당국이 공익 재단 기부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할 때 고려해야 할 구체적 조건과 원칙을 제시해줌으로써, '기부'를 악용해 편법적으로 경영권 승계나 재산 세습을 하는 행위도 더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이번 황씨 사건 선고에서 이를 위한 두 가지 법 해석 기준을 세웠다. 대법원은 "회사 주식을 공익 재단에 기부하기 전이 아니라 기부한 이후의 주식 지분 상황을 따져야 한다"며 그간 논란이 됐던 과세 기준 시점을 분명히 했다. 상속·증여세법은 기업의 최대 주주가 공익 재단에 기부하면 세금을 물리게 하고 있다. 대법원은 "주식을 출연(기부)하기 전의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기업 최대 주주의 재단 기부는 무조건 증여세가 부과된다"며 "이것은 주식 출연 후 공익 법인을 회사에 대한 지배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는 사정이 있는지를 살펴보지도 않은 채 그 악용을 (미리) 간주하는 결과가 된다"고 했다. 주식을 기부한 사람의 남은 주식과 공익 재단이 보유하게 된 주식을 합해 최대 주주인지를 가려야만 재산권 침해나 공권력 남용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과세 처분의 정당성이 확보된다는 것이다.

    황필상씨 사건의 쟁점과 대법원 판단 정리 표

    대법원은 이어 "기부자가 단순히 주식을 출연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기부자가 재단의 정관 작성이나 이사 선임 등 설립 과정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했을 때만 둘의 주식을 합할 수 있다"고 했다. 기업 오너 등이 세금을 내지 않고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공익 재단을 틀어쥐고 기업을 지배하려 했을 때만 '재단 기부 주식'에 증여세를 물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일선 세무 당국의 공익 재단 과세 실무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국세청 관계자는 "황씨 경우처럼 지금까지는 최대 주주가 공익 재단에 주식을 출연한 사실만 파악되면 무조건 세금을 매겨왔다"며 "앞으로는 기부 목적과 재단 설립·운영 개입 여부 등을 확인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세금 부과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2심 판결이 나온 후 5년 7개월여 만에 결론을 내놨다. 대법원은 재판이 늦어진 이유와 관련, "법 해석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선의의 기부는 장려하고 제도의 편법적 남용은 견제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두고 대법관들이 고심해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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