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원세개式 중화주의 되풀이?

    입력 : 2017.04.21 03:03

    ["한국, 중국의 일부" 발언 분석]

    中 "대동강 이북은 원래 중국땅, 조공책봉 질서는 지배예속 관계
    한국은 중화민족 한 支流" 주장… 조선, 淸 속국열전에 포함시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7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고 전해지면서 중국의 한국관(觀)이 관심을 끌고 있다. 시 주석이 했다고 알려진 발언은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 한·중 관계사에 대한 중국 학계와 국민의 일반적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 역사학계는 한국이 한민족 형성의 두 기둥으로 삼는 북방의 예맥족(濊貊族)과 남방의 한족(韓族) 중에서 한족만 한국사의 영역으로 간주한다. 고구려·부여·발해 등 예맥족이나 그 후예가 세운 나라들은 중국의 지방 정권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에 따르면 만주는 물론 대동강 이북도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중국의 영토가 된다. 중국에서 온 기자(箕子)가 평양에 조선을 세워 주(周)의 제후국이 된 이래 한(漢)은 낙랑·대방군, 당(唐)은 안동도호부를 두어 이 지역을 통치했다는 것이다. 한반도 남부에서 일어난 한족이 북진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에 도달할 때까지 한반도 북부는 중국의 영토였다는 주장이다.

    1882년 스물세 살에 조선으로 들어오기 직전 원세개의 모습. 야심만만한 청년 장교였던 그는 갑신정변 진압을 주도한 후 조선을 근대적 식민지로 전환하려는 청나라 정책을 실행하는 주역을 맡아 1885년에서 1894년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1882년 스물세 살에 조선으로 들어오기 직전 원세개의 모습. 야심만만한 청년 장교였던 그는 갑신정변 진압을 주도한 후 조선을 근대적 식민지로 전환하려는 청나라 정책을 실행하는 주역을 맡아 1885년에서 1894년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삼국시대 이후 19세기 말까지 한·중 관계는 동아시아의 조공책봉(朝貢冊封) 질서 속에서 이뤄졌다. 중국 주변의 나라들이 중국 황제에게 책봉 받고 공물을 바치면 중국이 답례품을 보내는 호혜 관계는 중국과 주변 국가들의 왕조 교체에 관계없이 지속됐다. 중국은 조공 책봉 질서가 종주국과 복속국의 지배 예속 관계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의례적·경제적 성격이 강하며 주변 국가들은 내치(內治)와 외교의 자율성을 보장받았다는 것이 세계 학계의 통설이다.

    중국 왕조의 부침에 따라 구체적 실상을 달리하던 한·중 관계는 19세기 후반 동아시아가 서양 열강의 침략을 받으면서 변화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과 서구 열강이 조선에 접근하자 중국은 조선에 대한 형식적 종주권을 실질적 지배권으로 전환하려 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이후 조선의 '감국(監國)'으로 부임한 원세개는 10년 동안 조선의 내치와 외교를 마음대로 주물렀다. 중국 정치가와 지식인들은 조선을 중화제국의 일부로 만들려는 구상까지 내놨다. 신해혁명에 참여했던 장병린은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신장·티베트·몽골·만주를 독립시키는 대신 유교 문명을 공유한 조선·월남·유구(오키나와)를 편입시켜 대중국(大中國)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조선은 1894년 청일전쟁의 결과로 중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1895년 4월 체결된 시모노세키조약은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한다'고 선언했다. 한·중 간의 전통적인 조공 책봉 체제는 폐지됐고 두 나라는 1899년 9월 한·청통상조약을 체결하여 대등한 근대적 외교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조선이 중국의 오랜 속방(屬邦)이라는 인식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1910년 조선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뒤 중국 국민당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이유로 '한국은 중국의 번속(藩屬)이었고, 그 혈통이 서로 통하는 은주(殷周)의 후예로 우리 중화민족의 한 지류(支流)'라고 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세워진 뒤 편찬된 '청사고(淸史稿)'는 조선을 월남·유구와 함께 '속국열전(屬國列傳)'에 포함시켰다. 중국이 2003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신청사(新淸史)'도 이런 전례를 따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제관계사 연구의 석학인 김용구 한림대 한림과학원장은 "1880년 전후하여 한반도를 만주에 편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중국에서 빗발쳤고 그 이후 '한반도는 우리 것'이라는 인식이 중국인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며 "시진핑 주석이 했다는 발언은 원세개적인 발상이 지금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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