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조] 게으른 말

  • 정수자 시조시인

    입력 : 2017.04.21 03:09

    [가슴으로 읽는 시조] 게으른 말

    게으른 말

    오늘은 더 잘 거야, 알바에서 잘렸거든
    노동을 기억하는 눈알은 베개 밑에
    숨겼다, 난 자리마다 걸어 나온 게으른 말.

    말의 눈 게으른 입 늦은 날 다독인다
    배를 뒤집어 까고 천천히 자라는 오후
    보세요! 든 자리마다 홍화꽃이 피었어요.

    ―서상희(1989~)

    나무들만 봄 수사(修辭)를 빛내는가. 거리의 말들도 수사를 연일 높인다. 안 되는 게 없다는 선거철. 제발 덕분에 시급이나 오르길! 알바생과 계약직은 늘 간절하다. 아동수당에 기초연금도 올린다니, 갸웃대는 꽃구름을 말구름이 능가하는 중이다.

    그 와중에 잘린 알바생 '오늘은 더 잘 거야' 좀 뒹굴어본다. 하지만 '난 자리마다 걸어 나온 게으른 말'과 노는 것도 며칠뿐. 잔고가 금세 빌 테니…. 그럼에도 '배를 뒤집어 까고 천천히 자라는 오후'가 '보세요!' 외치는 소식은 받들 수 있어 다행이다. '든 자리마다' 피우는 홍화꽃 위안에 웃는 것도 쉬어가는 여유겠다.

    아무려나 잘린 알바의 말놀이는 씁쓸하다. 그럴수록 눈 부릅떠야 하리. 공약(公約)들이 공약(空約)으로 끝나지 않도록! 이 땅의 삶에 우리 모두 더 이상은 지치지 않도록.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