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효도 의무 국가가 나눠 져야

  • 김안나 대구가톨릭대 교수·사회복지학

    입력 : 2017.04.21 03:11

    김안나 대구가톨릭대 교수·사회복지학
    김안나 대구가톨릭대 교수·사회복지학
    고시원에 혼자 살며 정부에서 주는 기초연금 20만원이 소득의 전부인 86세 최모 할머니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지 못한다. 소득이 최저생계비도 안 되지만 자녀 넷 중 일부가 소득이 있어 노모를 부양할 능력이 있다고 판정한 탓이다. 정부가 '효'를 강조하며 자녀에게 부양 의무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년 복지 패널 조사에 따르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한 3명 중 2명이 자녀 등 부양 의무자의 소득 및 재산 때문이라고 한다.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한 이들은 정부 의도대로 자녀 등 부양의무자의 도움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더 절약해야 먹고살 수 있는 빈곤의 위기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들의 빈곤은 부양 의무자 기준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인지를 보여준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논란이 커졌지만, 부양 의무자 제도 때문에 복지 사각지대 해소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면 부양 의무자의 범위를 축소하거나 부양 의무자 기준 자체를 완전히 폐지해야 할까. 그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일까.

    폐지를 주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극빈층 노인. /조선일보 DB
    대가족제도 아래 부모 공양을 미풍양속(美風良俗)으로 삼았던 게 우리 사회였다. 하지만 예전처럼 부모 부양을 의무로 여기지 않고, 심지어 부양을 거부하거나 피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통계청의 사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모를 부양할 책임이 '가족에게 있다'는 응답은 2002년 70.7%에서 2016년 30.8%로 감소했다. 반면 부양 책임이 '가족과 정부, 사회에 있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18.2%에서 45.5%로 증가했다. 이는 자녀나 친지들이 일차적 부양 의무를 지고, 여건이 안 되면 국가와 지역사회가 그 책임을 함께해야 한다는 국민적 인식 변화가 반영된 결과다. 이처럼 사적 부양과 공적 부양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게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먼저 기초생활 수급을 신청하는 사람들에게서 본인의 부양 상황을 증명하라는 책임부터 면제해줘야 한다. 지금은 기초수급자가 되려면 부양 의무자인 가족들이 부양할 능력이 있는지를 판단할 소득 및 재산 조사에 대한 책임을 부여받고, 가족이 본인의 부양을 기피하거나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연락이 두절되거나, 가족관계가 끊어진 이들에게 본인의 가족이 부양을 거부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라고 하는 것은 냉혹한 제도의 단면을 보여준다.

    독일에선 생활이 어렵다고 신청하면 정부가 실태를 조사해서 먼저 지원하고 만약 부양 의무자의 부양 능력이 충분한 것으로 확인되면 국가가 가족들에게 부양비를 사후 징수한다. 우리도 국세청의 정보를 활용해 '선 지원 후 징수' 제도를 안착시키면 부양 의무자 제도는 기존 우리 사회의 부모 공양의 가치를 발현하면서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를 부양하는 가족들을 위한 제도적 보상도 필요하다. 부모에 대한 가족 공제액을 대폭 높이고, 가족의 부양 사실이 확인되면 모든 가족이 복수로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효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부모조차 모시지 않으려는 세태 변화에 대응할 합리적인 복지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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