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전이 진행되면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공약 대부분이 유사한 경향으로 모아지고 있다. 두 후보 모두 진보를 지지 기반으로 하면서 중도·보수로 지지층 확장에 나선 것이 '공약 수렴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이다.

선거 초반에 문 후보와 안 후보가 가장 색깔 차이가 분명했던 쪽은 안보 문제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두 후보 모두 '안보 강화'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 후보와 안 후보는 국방 예산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현재 2.4%(작년 기준) 수준에서 3% 안팎까지 늘리겠다고 했다.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서도 두 후보 모두 작년 7월 발표 때만 해도 "원점 재검토" "국민투표" 등을 내세우며 반대했었지만 최근 사드 배치 쪽으로 입장을 전환하고 있다. 안 후보가 먼저 찬성으로 돌아섰고, 뒤이어 문 후보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다면 사드 배치도 강행할 수 있다"고 했다. 개성공단 재개에 대해 두 사람은 "북한 도발이 계속되면 재개가 어렵다"고 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선거가 야야(野野) 대결인 만큼 문 후보와 안 후보가 중도·보수 표심을 얻기 위해 경제·안보 정책에서 유사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한국출판인회의가 19일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는 문구와 함께 대선 후보들이 책 읽는 사진을 공개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출판인회의에서 제안한 사진들 중에 하나를 골랐고, 홍준표·유승민·심상정 후보는 직접 사진을 골라 보내왔다고 출판인회의는 밝혔다.

경제 분야 중 법인세 인상 문제에 대해서도 두 후보는 "증세는 필요하다. 다만 서둘러 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목소리로 법인세 인상을 주장했던 2012년 대선과는 달라진 것이다. 문 후보는 "증세의 가장 마지막 단계로 법인세를 올리겠다"고 하고 있고, 안 후보도 "증세에는 순서가 있다"고 했다. 오히려 보수 진영에 속하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문 후보와 안 후보는 똑같이 '중소기업부' 신설을 약속하고 있다. 부처 명칭에 문 후보는 '벤처'를, 안 후보는 '창업'을 넣겠다는 것에만 차이가 있다.

재벌 관련 공약도 상당 부분이 겹친다. 문 후보와 안 후보는 재벌의 지배력 강화를 차단하기 위한 방안으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을 주장하고 있다. 금산(金産) 분리를 위한 통합 금융감독 시스템 도입도 공통 공약이다. 공정거래위 권한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비리 기업인 사면권 제한 등에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문 후보가 2012년 대선 때부터 주장해온 '기존 순환출자 해소'를 이번 공약에서 제외하면서 두 후보의 공약은 더욱 비슷해졌다는 분석이다. 순환출자는 적은 지분으로 재벌 총수의 그룹 지배권을 유지하는 핵심 수단으로 문 후보는 내부 격론 끝에 이번 대선 공약집에서 이 내용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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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공약도 뭐가 누구 공약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두 후보는 현행 65세 이상(소득 하위 70%)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월 3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하고 있다. 지급 범위는 문 후보가 소득 하위 70%, 안 후보 50%를 제시했다. 현행 22만원인 노인 일자리 수당도 문 후보와 안 후보는 각각 40만원, 30만원으로 인상을 약속했다. 이와 관련한 공약은 5당 대선 후보 중 두 사람만 냈다.

육아수당과 별도로 주는 월 10만원의 아동수당 신설도 공통 공약이다. 문 후보는 0~5세 가정에, 안 후보는 0~11세 소득 하위 80%에 주겠다고 했다. 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초중고 자녀 대상으로 한 수당을 약속한 것과 비교하면 문 후보와 안 후보 공약은 닮아있다. 홍 후보는 이를 "돈 퍼주기"로 보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문 후보와 안 후보의 복지 공약은 야당 성향이라서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정부가 돈을 지급하는 것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고 했다.

최저임금(현행 시간당 6470원)도 문 후보와 안 후보는 모두 1만원으로 높이겠다고 했다. 문 후보는 2020년까지, 안 후보는 2022년까지를 목표 시기로 잡은 것이 차이다. 이 밖에 고위 공직자 비리수사처 신설 등을 담은 검찰 개혁, 기관투자자가 국민연금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등이 들어간 국민연금 개혁 등도 문 후보와 안 후보의 공통 공약이다. 이원재 여시재 기획이사는 "아동수당 월 10만원, 국공립 유치원 이용률 40% 확대, 기초연금 월 30만원 등은 세부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정책 대상자들 입장에서는 사실상 같은 공약"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