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한방보다 사진 한장의 힘 믿어… IS와 끝까지 싸우겠다"

    입력 : 2017.04.20 03:11 | 수정 : 2017.04.20 08:13

    [오늘의 세상]
    시리아 테러 현장서 아이들 구한 사진기자 하바크·알레게브 인터뷰

    "사방서 울부짖는 아이들… 정신 들자마자 무작정 달려갔다
    우리가 보도한 사진, 언젠가 전범들 법정 세울 때 증거될 것
    지금도 수많은 시리아 청년들이 총 대신 카메라로 테러 맞서"

    "버스 폭발로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떴을 때 건너편에 어린아이가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작정 아이를 향해 달려갔다. 고민하지 않았다."

    지난 15일(현지 시각) 시리아 북부 알레포의 피란민 버스 폭탄 테러 현장에서 취재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대신 다친 아이를 구조한 시리아 현지 매체 밸래디(Baladi)의 사진기자 압둘 카디르 하바크(25)는 19일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테러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말을 하면서 숨이 거칠어졌다.

    당시 하바크는 알레포를 떠나는 피란민 버스 행렬을 취재하고 있었다. 그는 "검문소 통과가 지연되자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렸는데, 어린이가 모인 곳에서 갑자기 굉음이 울렸다"고 말했다. 이 테러로 어린이 68명을 포함해 최소 126명이 사망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목격자 증언을 인용해 "누군가 버스 주변에 사탕·초콜릿 등 먹을 것을 내놨고, 어린이 등 사람들이 모이는 순간 폭탄이 터졌다"고 했다. 이 매체는 "극단주의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지난 15일(현지 시각) 시리아 북부 알레포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현장에서 시리아 사진기자 압둘 카디르 하바크가 오른손에 카메라를 쥔 채 부상한 아이를 들고 응급차로 뛰어가고 있다.
    지난 15일(현지 시각) 시리아 북부 알레포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현장에서 시리아 사진기자 압둘 카디르 하바크가 오른손에 카메라를 쥔 채 부상한 아이를 들고 응급차로 뛰어가고 있다. /시리아 매체 밸래디
    버스 주변에 있던 하바크는 폭발 순간 뒤로 날아가면서 수십초간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그는 "귀가 멍하다가 조금씩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비명이 귓전을 때렸다"고 했다. 중상을 입은 사람들이 기어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쓰러진 아이를 구하러 뛰었다. 구조대원들이 "폭발이 또 일어날지 모른다" "불길 주변으로 가면 안 된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망설이지 않았다고 했다.

    하바크는 한 어린이를 응급차에 옮겨놓고 다시 폭발 테러 현장으로 내달렸다. 아이들을 더 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온몸이 까맣게 그을린 채 쓰러진 아이를 보자 다리가 풀리면서 그대로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그는 "살아 있을 것이라는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비참한 어린이 주검에 눈물이 터져나왔다"고 했다.

    하바크의 이런 모습은 같이 있던 동료 기자 무함마드 알 레게브(21)가 찍은 사진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하바크는 "(사진을 찍은) 레게브도 폭발로 기절했다가 깨어난 뒤 나와 같이 부상자를 구조했다"며 "구조대원이 많이 온 뒤에 '현장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지난 15일(현지 시각) 시리아 알레포에서 발생한 피란민 대상 테러 현장에서 취재를 멈추고 구조에 나선 시리아 사진기자 압둘 카디르 하바크(왼쪽 사진). 당시 하바크와 구조 활동을 하다가 그의 모습과 참혹한 테러 현장을 사진으로 남긴 동료 기자 무함마드 알레게브(오른쪽 사진).
    지난 15일(현지 시각) 시리아 알레포에서 발생한 피란민 대상 테러 현장에서 취재를 멈추고 구조에 나선 시리아 사진기자 압둘 카디르 하바크(왼쪽 사진). 당시 하바크와 구조 활동을 하다가 그의 모습과 참혹한 테러 현장을 사진으로 남긴 동료 기자 무함마드 알레게브(오른쪽 사진). /압둘 카디르 하바크·무함마드 알레게브

    이날 하바크에 이어 레게브와도 전화 연락이 닿았다. 그는 현재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에 머물고 있다. 레게브는 "테러 현장 사진은 언젠가 (시리아) 내전이 끝나면 전범들을 재판에 세울 때 증거물이 될 수 있다"면서 "구조대가 온 모습을 확인하고 한쪽에 던져놨던 카메라를 들고 떨리는 손으로 셔터를 눌렀다"고 했다.

    레게브는 당시 하바크를 비롯해 테러 현장에서 마이크와 카메라 등 취재 장비를 내려놓고 구조 활동을 펼치는 기자들과 폭발로 뼈대만 남은 차량 등을 촬영했다. 레게브는 "하바크는 내전의 실상을 보도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기자"라며 "하바크 등 많은 시리아 젊은이가 총 대신 펜과 카메라를 들고 시리아 내전과 테러 현장을 3년째 뛰어다니며 아사드 정권과 IS와 싸우고 있다"고 했다.

    알레포와 이들리브 등 시리아 북부는 미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 매체가 접근하지 못하는 전쟁터다. 이달 초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미사일 공격이 벌어진 곳도 이들리브의 한 마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리아 젊은이들은 "우리가 직접 전쟁과 테러의 참상을 국제사회에 알리자"며 자체 매체를 만들어 뉴스를 타전하고 있다.

    레게브는 "저널리즘을 공부하지도 않았고 카메라를 다루는 방법도 제대로 모른다"며 "그러나 폭탄 한 방보다는 사진 한 장이 더 힘 있다는 믿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전쟁과 테러 현장을 취재한다"고 했다. 그의 소원을 묻자 "내전이 끝나는 날 고향 알레포에 가서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라고 했다.

    [나라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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