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忖度=알아서 기어라

    입력 : 2017.04.20 03:06

    오윤희 국제부 기자
    오윤희 국제부 기자
    고공 행진하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지지율을 단숨에 끌어내렸던 모리토모(森友) 사학 스캔들은 일본 밖에서도 큰 관심사였다. 지난달 말 외신 기자회견이 일본 도쿄에서 열렸는데, 단어 해석을 두고 작은 혼선이 있었다. 가고이케 야스노리(籠池泰典) 모리토모 학원 이사장은 "어떻게 국유지를 그토록 헐값에 살 수 있었나"라는 외국인 기자들의 질문에 "총리가 직접 지시하지는 않아도 (주변 사람들의) 손타쿠가 있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배석한 영어 통역사는 처음엔 '손타쿠(忖度·촌탁)'를 "행간을 읽다(read between the lines)"라고 통역했지만, 곧바로 "영어엔 같은 뜻을 가진 단어가 없다"면서 '손타쿠'라고 그대로 말하고 "상대방의 심중을 읽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타쿠'는 일상에선 거의 쓰지 않는 단어이지만 지난달부터 일본 언론에 오르내리며 유행어로 부상했다.

    손타쿠는 중국 고전 시경(詩經)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미리 헤아려서 안다(他人有心予忖度之)"에 나온다. 그런데 일본에선 '지위가 높은 사람이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아랫사람이 알아서 일을 처리한다'는 뜻으로 변질됐다.

    일본 아베 총리가 3월19일 요코스카 소재 방위대 졸업식에 참석해 앉아 있다. /EPA 연합뉴스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은 모리토모 학원이 초등학교를 신축하기 위해 오사카 내 국유지를 감정가의 14%밖에 안 되는 헐값에 사들인 것이 발단이 됐다. 아베 총리의 최대 지원세력인 우익단체 '일본회'의 회원인 가고이케 이사장은 원래 아베 총리 부부와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모리토모 학원이 운영하는 유치원은 운동회 때마다 학생들에게 "아베 총리 힘내라"는 구호를 외치게 했을 정도다.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는 이 학교 명예 교장 직함을 갖고 있다. 재무성, 국토교통성, 오사카부(府) 등 담당 부처와 지자체가 '총리의 심중을 미리 헤아려' 헐값 토지 매각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도쿄신문은 "(소셜미디어 등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유행어 손타쿠는 일본 사회 특유의 문화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관료가 정치인들에게 알아서 머리를 숙이거나, 집권 자민당 의원들이 지도부로부터 제명당하지 않기 위해 당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행태가 모두 이 손타쿠 문화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오카다 겐지(岡田憲治) 센슈대학 교수는 일본판 허핑턴포스트 칼럼에서 "민주주의는 실패할 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논의와 검증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면서 "이런 일련의 과정을 모조리 생략해 버리는 손타쿠는 민주 정치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권력자의 횡포와 지위가 높은 사람들 앞에서 아랫사람이 '알아서 기는' 행태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단어 '손타쿠'는 낯설지 몰라도 그 의미는 익숙하게 다가온다. 알아서 기는 아랫사람이 당장엔 입안의 혀 같겠지만 결국 윗사람을 궁지로 몬다. 손타쿠의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느 나라 어떤 조직이든 구성원이 수평적으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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