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女의 벽 깬 마라토너, 50년 만에 다시 뛰다

    입력 : 2017.04.19 03:04

    [보스턴 마라톤 최초 여성 출전자, 70세 스위처의 기념비적 레이스]

    여성 마라토너가 없던 당시 달리던 중 저지당하고도 완주
    여성의 스포츠 참여 역사 바꿔 "다가올 50년, 전보다 나아질 것"

    18일(한국 시각) 121번째 보스턴 마라톤이 열린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70세의 여성 마라토너 캐서린 스위처(미국)가 결승점에 다가서자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환호했다. 그의 가슴엔 '261' 배번이 선명했다. 42.195㎞ 풀코스 최종 기록은 4시간44분31초. 50년 전 그가 여성 마라토너로는 공식적으로 처음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했을 때보다 불과 24분 늦은 기록이었다.

    보스턴 마라톤 121년 역사상 첫 번째 여성 참가자이자 완주자인 캐서린 스위처(가운데)가 18일(한국 시각) 보스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뒤 남편(왼쪽)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보스턴 마라톤 121년 역사상 첫 번째 여성 참가자이자 완주자인 캐서린 스위처(가운데)가 18일(한국 시각) 보스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뒤 남편(왼쪽)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금은 누구에게나 문이 열린 대회지만 반세기 전만 해도 여성 마라토너는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할 수 없었다. 여성이 달리기를 하면 '다리가 엄청나게 커진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근거 없는 낭설이 나돌던 때였다.

    1967년 당시 시러큐스대학에서 언론학을 공부하던 스무 살 스위처는 육상 클럽에서 활동했다. 그의 꿈은 보스턴 마라톤 완주. 처음엔 "어느 여성도 보스턴 마라톤을 뛴 적이 없다"고 말리던 스위처의 코치는 그가 훈련 때 풀코스 완주에 성공하자 생각을 바꿨다. 스위처는 자신의 원래 이름 '캐서린' 대신 'K.V'라는 중성적인 이니셜을 적은 참가 신청서를 냈고 배번 '261'을 가슴에 달았다.

    대회 당일 출발선에 선 스위처를 본 남성 참가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단발머리에 립스틱을 바르고 아이라이너를 그린 스위처는 유일한 여성 도전자였다. 스위처는 "처음엔 두려웠지만 '내 여자 친구도 함께 뛰었으면 좋겠다' '당신 옆에서 끝까지 함께 뛰겠다'는 참가자들의 말을 듣고 힘이 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총성이 울리고 3㎞ 정도를 달렸을 때쯤 사건이 벌어졌다. 여성이 참가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대회 감독관 작 셈플이 그의 레이스를 막기 위해 코스로 뛰어들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셈플은 "당장 달리기를 멈추라"고 소리치며 스위처의 배번을 뜯고 목을 잡아챘다. 하지만 곁에서 함께 달리던 코치와 남자 친구가 셈플을 막으면서 다행히 스위처는 완주에 성공했다. 이튿날 미국 신문을 비롯한 각종 언론은 여성 마라토너와 그를 막으려는 보스턴 마라톤 감독관의 격렬한 몸싸움을 대서특필했다.

    스위처의 보스턴 마라톤 완주는 여성의 스포츠 참여를 위한 저항운동으로 이어졌다. 결국 대회 조직위는 1972년부터 여성의 대회 참가를 공식 허용했다. 1984 LA올림픽부턴 '여자 마라톤'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스위처는 현재 작가이자 육상 경기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두려움 없는 261(Fearless 261)'이라는 비영리 여성 달리기 모임을 운영 중이다.

    그는 이날 보스턴 코스를 완주한 후 "그때 내가 끝까지 달리지 않았다면 아무도 여자가 그렇게 먼 거리를 뛸 수 있다고 믿지 않았을 것"이라며 "오늘 레이스는 지난 50년을 축하하는 의미였다. 다가올 50년은 이전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스턴 마라톤 조직위는 그의 배번 '261'을 영구 결번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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