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돋보기] '강남 서민'은 왜 불행한가

    입력 : 2017.04.19 03:07

    어수웅 문화부 차장
    어수웅 문화부 차장
    반포 33평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있다. 그런데도 '강남 서민' '하우스 푸어'를 입에 달고 산다. 자기 집이 아니라 은행집(주택담보대출)이며, 아이들 학원비 때문에 저축은 꿈도 못 꾼다는 것이다. 예외적인 하소연일까. 1년 전 NH투자증권의 100세 시대 연구소 통계에 따르면 중위 소득의 150% 이상을 버는 상대적 고소득층 가운데 자신을 '빈곤층'으로 여기는 비율이 49%였다. 중위 소득의 150%면 4인 가족 기준 월 563만원. 월 600만원 가까이 버는데 중산층도 아니고 빈곤층이라. 물론 스스로가 그렇게 여긴다는 데 핵심이 있다.

    이번에는 세대의 사례. 소설가 장강명의 장편 '한국이 싫어서'는 꽤 화제가 됐지만, 비슷한 시기에 번역된 일본의 '절망의 나라에서 행복한 젊은이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지은이는 도쿄대 박사과정인 85년생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 제목이 곧 메시지다. 취업률이 바닥이고, 결혼도 힘들며, 고령화로 청년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데도 자기 또래 일본 젊은이들은 행복해한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 이후 일본 경제가 불황을 탈출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이 책의 일본 출판은 소위 '잃어버린 20년'의 정점이던 2011년의 일이었다.

    '절망의…'가 한국에서 번역된 뒤 장강명이 노리토시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만약 일본 소설가가 '일본이 싫어서'라는 책을 쓴다면 반응이 어떨 것 같으냐고.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공감 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 대다수 일본 젊은이들은 '일본을 버려야지'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일본에 태어나서 좋다'고 대답한 젊은이들이 100%에 육박한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조선일보 DB
    까닭은 뭘까.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는 소박한 행복에 안주하는 '자기만족적 삶'으로 봤다. 스마트폰이나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기가 있고, 이를 함께 즐길 만한 친구나 연인 등 사회관계자본이 있다면 불행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해하지 마시길. 사회 시스템에 책임이 없다는 것도 아니고, '소박한 자기만족적 삶'이 절대 가치라는 것도 아니다. 이 글의 목적은 강남에 아파트 가진 사람도 못살겠다 푸념하고, 이 땅에서가 아니라 이민을 통해 '자기만족적 삶'을 찾겠다는 태도에 대한 문제 제기다.

    안타깝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은 지금까지의 성장 못지않게 해체도 압축적이다. 대학 진학→취업→결혼→4인 가족→아파트 마련. 이전의 기성세대가 '행복'의 필요조건이라 믿었던 연결 벨트는 지금 역순으로 무너지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AI와도 일자리를 놓고 싸워야 하지 않는가.

    '교육 사다리' 복원이나 비정규직 차별 해소 등 양극화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과는 별도로 행복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것 같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을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래서 더욱 대비가 필요하다. 이 유동하고 급변하는 시대에 자신만의 행복을 정의할 수 없다면 매일매일이 지옥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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