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사드'라는 논제

  •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입력 : 2017.04.19 03:12

    논쟁 잘하면 세상 바꾸지만 함량 미달과 규칙 무시 토론은 소모적 갈등 빚을 위험 있어
    사드 찬반도 논제로는 부적합… 다퉈봐야 親美·親中으로 갈려 아까운 시간이나 허비할 것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좀 힘든 상상이긴 하지만, 만약에 우리나라의 사드 배치와 비슷한 상황이 서양 어느 나라에서 벌어졌다면 사드를 둘러싼 논쟁은 애초부터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사드 배치 찬반론'이 아예 논제로 채택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원전부터 토론 수업을 해 온 서양인들은 토론거리와 아닌 것을 구분하는 데서부터 토론 훈련을 한다. 세상만사를 다 논쟁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령 '여름은 겨울보다 덥다'는 사실을 놓고 토론하지는 않는다. 그 안에 갈등 요소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를 놓고도 토론하지 않는다. 나의 주관적 느낌이 토론의 먹잇감이 되게 할 수는 없다. 역사 속에는 상식에 도전한 발칙한 논제가 제법 많다. 진화론의 찰스 다윈은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라는 논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는데, 이는 그가 던진 과학적 논제를 당시 사회가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가치 논제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잘 던진 논제는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힘이 있다. 그렇지 않은 논제는 끝없는 소모와 갈등만 불러온다.

    논쟁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이유는 논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논쟁이란 변화의 옹호자와 현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 사이의 대립이다. 사람들이 모두 현재에 만족하는 사회라면 논쟁도 없을 것이다. 변화를 원한다면 현 상태의 부조리에 도전해야 한다. 항거하고, 명분을 쌓고, 증거를 모아 마침내 세상을 설득해야 한다. 그럴 의지가 없다면 그냥 살아야 한다.

    한국에 도착한 사드 장비. /주한미군사령부 제공
    사드 배치 문제를 곧바로 논제로 받은 건 정치권이다. 찬반을 다투는 사이 사드는 한국에 상륙했고, 한반도 위기도 고조되었다. 바뀐 상황에서도 공방을 계속하며 정당들이 당론을 정하더니, 대선 후보들이 토론을 이어받았다. 찬성하는 후보, 반대하는 후보, 의견을 바꾼 후보, 결정을 미루자는 후보로 태도도 다양하다. 각기 견해를 갖는 것은 자유지만, 이런 상황에서 사드 문제를 대선 토론 논제로 다루는 건 적합하지 않다.

    우선 논쟁의 실효성 문제다. 논쟁은 정책을 단독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한·미 공조의 틀에서 사드 배치가 전략적으로 지연되거나 논쟁 여부와 관계없이 사드 배치가 진행 중이라면 논쟁의 의미가 퇴색한다. 논쟁의 효과가 사드 배치의 효력과 연동해서 나타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드 논쟁은 그저 거대한 말잔치에 지나지 않는다.

    논쟁 상대도 문제다. 한반도 평화가 간두에 몰린 상황에서 사드의 전략적 효과에 대한 찬반을 가르기 어렵다는 것도 논제로서 한계다. 사드 배치 이전 세상이 더 좋다는 후보와 이후 세상이 더 낫다는 후보로 뚜렷이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후보들은 모두 안보를 굳건히 하고 평화를 지켜야 하는 거대한 명제를 끌어안고 있다. 사드 문제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 외교 능력, 결단성, 국익 수호 의지를 알아보는 창의적 논제를 발굴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논제는 또 주어진 시간에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를 선택해야 한다. 몇 분 동안 지구를 살리는 정책을 토론하지는 않는다. 한반도의 핵 억지력과 관련된 복잡한 국제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문제를 사드 찬반 이슈로 단순화해 대선 후보들에게 몇 분 사이에 토론하라는 것은 토론을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사드 배치를 둘러싼 찬반 논쟁을 할 수는 있다. 찬성과 반대에 따르는 다양한 문제점을 발견하고 상호 학습하기 위한 '아카데믹 디베이트'가 그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 토론은 그런 한가한 지적 게임을 즐기는 토론이 아니다. 정책 논쟁으로서 실효성을 잃은 사드 이슈를 '사드 배치 옳은가 그른가'라는 가치 논쟁으로 끌고 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 만약 그런 논제를 후보 토론회에서 다룬다면 '중국 편이냐, 미국 편이냐'는 식의 치고받는 논쟁에 그칠 것이다.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의 명운을 짊어져야 할 우리의 대통령 후보들이 그런 볼썽사나운 다툼을 연출해야 할 이유가 없다.

    토론 의제 중에는 선택하는 순간 논제와 토론자가 함께 추락하는 논제가 있다. 논쟁 교과서에서는 이런 논제를 '가미카제 논제'라고 부른다. 찬성과 반대의 끝없는 대립과 소모전으로 서로 망하는 논제를 말한다. 누가 이런 논제로 토론하자고 요구하면 거절해야 한다고 교과서는 가르친다.

    그게 비단 '사드 논쟁'뿐일까. 선거 철만 되면 아무것에 대해서나 일단 다투고 보는 말씨름 수준의 논쟁이 정치권에 그득하다. 지역 구도, 유력 보수 후보, 인수위가 없어 '3무 선거'라는 이번 대선은 어느 때보다 시간이 촉박한 선거이기도 하다. 함량 미달 논제와 규칙을 무시한 토론에 소모하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