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판사들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판사들을 상대로 사법부 개혁 관련 설문을 진행해 외부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려 했다. 일부 언론은 이 대회를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 고위 관계자가 막으려 했고 여기에 반발한 이모 판사의 행정처 인사 발령이 취소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일로 '고위 관계자'로 지목된 임종헌 행정처 차장이 사퇴하고 진상조사위까지 만들어지는 등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진상조사위가 어제 발표한 결과를 보면 사퇴한 임 차장은 이 일과 직접 관련이 없고 대법원 양형위원회 이규진 상임위원이 "학술대회를 내부 행사로 치르고 비보도로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전임 회장이었던 이 위원은 행정처 회의에서 관련 보고도 했다고 한다. 또 여기에 부담을 느낀 이 판사가 사의를 표명하자 행정처 발령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평소 일선 판사들에게 위압적으로 대한다는 불만, 고질적인 판사들의 인사 불만 등이 겹쳐져 일이 커졌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는 9월 양승태 대법원장이 퇴임하는 사법부 수뇌부 교체기와 정권 교체기를 앞두고 이런 소란이 벌어진 바탕에는 법원 내부의 진보·보수 세력 갈등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진보적 성향 판사 모임이었던 옛 '우리법 연구회' 출신들이 국제인권법연구회 모임 설립을 주도했다는 말도 나온다. 판사들 내부도 좌·우로 나뉘어 정권 교체기마다 음해하고 비난하면서 패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것인가. 우리 정치 풍토로 볼 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