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able] '열린 차단' 혹은 '밀폐된 개방'… 색안경의 심리학

  • 정이현 소설가

    입력 : 2017.04.19 03:04

    [정이현의 단어 더하기 단어] 선(SUN)+글라스(GLASS)

    내 시력은 아주 좋지도 아주 나쁘지도 않다. 반드시 안경을 써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안경을 쓰는 편이 시력 보호에 더 낫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운전할 때 말곤 여간해선 안경을 쓰지 않는다. 몇 년에 한 번씩 시력 검진을 받고는 열심히 안경을 써 보리라 다짐하지만 그때뿐이다.

    언젠가 좋아하지 않는 것 목록에 '안경'도 넣은 적이 있었는데, 인쇄된 뒤에 읽고 나서야 그 뒤에 몇 마디 부연해야 했음을 알았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안경이라는 물건 자체가 아니었다. '나는 안경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두려워한다'는 것이 내가 표현하고 싶은 문장이었다.

    왜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안경을 쓰면 너무 잘 보여서, 라고 속마음이 대답했다. 안경 덕분에 환한 세상을 누리다가 혹시 쓰지 못하게 되면 세상이 더 흐릿하게 느껴질까 봐 겁이 나는 것이다. 이것은 대체 어떤 심리의 반영일까? 안경이라는 단어가, 눈 안(眼), 거울 경(鏡), 즉 '눈 거울'이라는 의미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선글라스관련 일러스트
    안병현
    리처드 코손의 저서 '안경의 문화사'(에디터)에 의하면 안경은 1260 ~1280년 사이에 발명되었다고 전해지는데 발명자가 누구인지는 불명확하다고 한다. '성자는 존엄의 상징으로 안경을 착용했으며, 스페인과 중국에서는 미신적으로 숭배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단다.

    안경에 대한 책 중 나를 가장 매혹시킨 것은, 프랑스의 저술가 프랑크 에브라르의 '안경의 에로티시즘'(마음산책)이다. 인간의 몸에 가장 가까이 밀착되어 있는 '안경'이라는 물체 뒤에 숨겨진 다양한 의미들을, 여러 문화 텍스트를 통해 읽어낸 작업이다. 에브라르에 따르면 현대에서 안경은 시력을 보완하는 기능을 넘어 '보려는 욕망과, 보이기 위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가 선글라스(sun glass)에 대해 기술한 부분이 특히 흥미롭다. '선글라스는 햇볕을 가리는 동시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숨기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선글라스의 본래 목적은 '태양을 가리는 유리'라는 뜻 그대로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데 있다. 그러나 바깥세상과의 '열린 차단' 혹은 '밀폐된 개방'을 원할 때 선글라스를 쓰는 것처럼 간편하면서도 효과 좋은 ('가성비' 뛰어난!) 방법도 흔치 않다. 얼마 전 한 뮤지션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동그랗고 불투명한 선글라스가 없으면 무대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서였다.

    현대적 의미의 선글라스는 1930년대 항공 조종사들의 눈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2세기 중국 송나라 때 판관들이 죄인을 심문할 때 표정을 숨기기 위해 연수정을 이용해 만든 색안경의 존재가 있었다고 한다.

    정말 눈을 가리면 진심을 감출 수 있을까? 재미있는 것은 선글라스가 역설적으로 타인의 주의를 끄는 역할도 한다는 점이다. 불투명한 렌즈 뒤에 눈도 표정도 가려졌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타인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신비로움이라는 휘장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요즘엔 미러 선글라스가 대유행이다. 이 미러 선글라스를 쓰면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한 가까이 있는 것을 거울처럼 되 비춘다. 최근 어떤 모임에 나갔다가 새로 장만한 선글라스를 쓰고 온 친구를 보았다. 곁에 무심코 가까이 다가갔다가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내 얼굴이 상대의 선글라스 안에 고스란히 비쳤기 때문이다. 거리를 걸어가다 무방비 상태에서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과 마주쳤을 때처럼 기분이 묘해졌다. 남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볼품없지 않았더라면 기분이 좀 달랐을까.

    일행 중 하나가 말했다. "괜히 남의 눈 보려 들지 말고 자기 얼굴이나 똑바로 보고 살라는 시대정신이네." 다 같이 웃었지만 어쩐지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돌아오는 내내 머리가 복잡했다. 자신의 눈은 완벽히 감추는 대신 세상을 되 비추는 그 선글라스의 존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