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able] 앞집 중학생이 '냄새' 맡은 불륜… 8층 남자는 새 거처를 구했을까

    입력 : 2017.04.19 03:04

    [최보윤 기자의 퇴근길, 혼자]

    "부럽다."

    그날 자리에 있었던 남자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아니, 그날 그 자리만 특정하는 건 아니다. 유부남 감독과 배우가 공식 석상에서 "사랑하는 사이"라고 밝힌 뒤 사람들이 모여든 자리 어디선가는 "부럽다"는 단어가 들리곤 했다. 세속적인 소란스러움이 싫어 초야(草野)에 기거하기로 했다는 한 인사와의 통화에서도 반응은 같았다. 마치 녹음기를 틀어 놓은 듯. "부럽다. 그리고 예쁘다." 문제의 그녀가 예쁜 건지, 현실 속에서 영화를 찍고 있는 그들의 행위가 예쁘다는 건지는 구분 가지 않는다.

    "불순해." 누군가 급제동을 걸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차라리 순진한 거지." 충동과 본능을 이기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게 대견한 거 아니냐 했다. 정착해 살아보면 알게 될 거라고. 말로 꿈도 못 꾸느냐 했다. 일행 중 한 명이 자기 변론처럼 '남의 집' 목격담을 풀어놓는다. 돌림노래처럼 비슷한 사례들이 이어진다.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는 잭슨 폴록(왼쪽)과 그의 아내 리 크래스너.(1950년)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는 잭슨 폴록(왼쪽)과 그의 아내 리 크래스너.(1950년) / 미국 스미스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미술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업가가 우리 앞집에 살았지. 그게 '세컨드 하우스'라는 건 중학생 우리 딸 때문에 알았어. 앞집 사는 언니 화장품 냄새가 복도에 진동한다는 거야. 그런데 어느 날 딸이 식탁에서 그래. '앞집에 이제 그 언니 안 와요. 다른 언니가 와요.'"

    중학생 딸을 둔 아비는 그날부터 '증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예의주시한 게 두어 달. 앞집 그녀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게 됐다. 8층. 그가 버튼을 누르자 앞집 여자는 13층을 눌렀다. 현관문을 반 뼘 열고 내다봤다. 그의 생각이 맞았다. 13층에서 그녀는 유유히 내려오고 있었고, 앞집 남자는 "자기야 왔어?"라며 여자를 와락 껴안았다. 13층은 그들 나름의 '알리바이'였던 것이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두 명의 여인이 떠올랐다. 소설 '단순한 열정' '집착' 등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옮겨 유명해진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와 미국 추상표현주의화가 잭슨 폴록의 아내이자 유명 화가인 리 크래스너다.

    '지난해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로 시작하는 소설 '단순한 열정' 속 상대는 '돌아갈 곳 있는' 연하 유부남이다. 그녀에겐 고결한 사랑이고, 남들은 불륜으로 보는 그런 관계. "내 의지나 욕망 그리고 지적 능력이 개입되어 있는 행동은 모두 그 남자와 관련된 것뿐"이라고 말하는 여자. 그에게 집착하는 그녀가 미련할 정도로 진솔해 차라리 '욕망이란 자산의 비뚤어진 탕진'이자 '육체적 탐닉일 뿐'이라 읽고 싶었다.

    리 크래스너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내어주는 여자다. 알코올 중독과 폭력성, 정신 분열에 방황하던 잭슨 폴록의 천재성을 끌어냈던 그녀는 폴록에게 18살 연하의 젊고 예쁜 화가 루스 클리그만이란 애인이 생기자 잠시 집을 비워준다. 두 남녀의 한때 피어오르는 불꽃 같은 열정이 식기를 바라면서.

    그들의 결말. 아니 에르노는 이별을 한다. 그녀는 책에 '살아있는 텍스트였던 그것들이 결국은 찌꺼기가 된다'라고 썼다. 리 크래스너의 남편 잭슨 폴록은 애인 루스 클리그만을 태우고 음주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교육상 안 좋아서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더라고. 그에게 직접 말했지. 사회적 저명인사가 그러면 되느냐고." 앞집 남자인 그 사업가는 다음 날로 집을 비웠다고 한다. 결국은 술안주로 끝났던 그날의 이야기들. '앞집 남자'가 어디서 또 새로운 집을 구했을지는, 거기까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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