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읽기] 잠 못 이루는 밤, 봄은 즐기고 계신가요?

  •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입력 : 2017.04.17 03:03

    수면은 '자율주행'의 영역… 의식적으로 조종할 수 없어
    불면은 안에 숨은 불안이 문제…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해결돼
    미래 걱정 말고 오늘을 살길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불면(不眠)의 밤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뜬 후 각성상태로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리고 해가 떨어져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자려는 힘이 강해지고 그 힘이 각성을 유지시키는 힘을 앞서게 되면 뇌는 수면에 진입한다. 불면은 여러 이유로 깨우는 힘이 자려는 힘보다 우위에 있다 보니 찾아오는 현상이다.

    '여보 마음 편히 먹고 자 봐요' 하고는 혼자 곯아떨어져 버리는 남편이, 잠 못 이루는 아내는 너무 얄밉다고 한다. 미움받는 남편 입장엔 억울하다. 못된 말을 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못된 말은 아니지만 의학적 관점에선 틀린 말이다. 수면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조정할 수 없는 '자율주행'의 영역이다. 자율주행 하니 첨단의 멋진 느낌이지만 좀 삐딱하게 이야기하면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지 맘대로' 작동된다는 것이다. 심장은 생존에 가장 중요한 기관인데 이 역시 자율 주행이다. 평생 쓸 심장이니 최소한으로 움직여 아껴 쓰자고 마음 먹어도 소용없다. 지가 뛰고 싶은 만큼 뛴다. '마음 편히 먹고 자'란 이야기는 '심장 박동수를 마음대로 조정해봐'만큼이나 어려운 이야기이다.

    강제로 잠을 뺏는 수면박탈(睡眠剝奪)이 고문 방법일 정도로 불면은 마음과 몸에 괴로움을 준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불면증에 사용되는 약물 중 대표적인 것이 수면제다. 자려는 힘을 강화해 주는 약물이다. 당연히 졸릴 때 먹어야 효과가 좋다. 잠을 일찍 자고 싶다고 미리 먹게 되면 각성하려는 힘이 강한 상황이라 수면에 못 이르고 약 용량이 증가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무조건 잠이 오게 하는 약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약이다.

    /헬스조선 DB
    불면증 환자분들에게 봄을 잘 즐기고 계시는가 물으면 '봄이 오긴 온 것 같은데 즐길 여유가 없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불면 안쪽에 불안이 숨어 있어서다. 불안은 위기관리를 담당하는 생존 시그널이기에 적당한 불안은 삶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과도한 불안은 마음에 봄을 즐길 여유를 잃게 하고 밤에는 잠자는 것을 방해한다. 불면은 그 자체가 스트레스 요인이라 마음을 더 불안하게 하고 결국 불면을 점점 강화하는 악순환마저 일어난다. 불안해서 잠이 안 오고 잠이 안 오니 더 불안해지는 것이다. 불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안한 마음을 안심시켜 주어야 한다.

    불면을 일으키는 불안을 약으로 잠시 눌러줄 순 있지만, 불안한 마음은 본질적으론 삶을 살아가는 스타일과 연관되어 있다. 약 없이 잘 자기 위해서는 약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한계를 인정하는 철학적 여유를 훈련해야 한다. 불안 대처엔 조정보단 수용이 효과적이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수용이다. '수면제 먹고 편히 자겠습니다'라고 약물을 편히 받아들이는 분보다, 밤마다 약과 헤어지기 위해 전투를 벌이는 분들이 오히려 수면제와 이별을 잘 못 하는 아이러니를 적지 않게 경험한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각성된 뇌를 이완시키기 위해 약을 쓰는데 약 먹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다 보니 스트레스가 두 배로 늘어나 이완을 위해 더 강한 약물치료가 필요한 황당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경제, 정치, 전쟁 불안 등 마음에 병이 없어도 불안감이 치솟을 만큼 주변에 불안이 가득한 상황이다. 불안은 미래의 위험을 경고하는 시그널이다. 미래에 대한 준비, 중요하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바로 오늘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내일의 오늘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불면은 내가 지나치게 오늘보단 미래에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만드는 불면이 가져오는 제일 슬픈 부작용은 지금 지나가고 있는 봄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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