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식물원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로부터 시작됐다

    입력 : 2017.04.15 03:02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ㅣ조홍민 옮김 | 글항아리ㅣ256쪽 | 1만5000원

    일본 에도(江戶·지금의 도쿄)의 서쪽인 간토(關東) 평야는 원래 황량한 땅이다. 후지산 화산재가 퇴적한 곳이어서 논농사가 어려웠고, 쌀이나 보리 대신 밀과 메밀을 심었다. 이 일대 빈민들은 변변찮은 메밀 요리를 먹으며 근근이 살아가야 했다. 그런데 지금 메밀국수는 미식가의 요리라도 된 듯 대접받는다. 어떻게 된 일일까?

    열쇠는 '간장'에 있었다. 밀농사를 많이 했기 때문에 콩에 밀을 더한 시골 간장(地回り醬油)이 개발됐고, 이것이 나중에 진한 간장(濃口醬油)으로 진화했다. 간토 지방 특유의 비린내 많은 생선과 맛없는 채소에 꼭 어울리는 이 간장이 메밀국수의 국수장국으로 변신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메밀국수의 이 같은 운명은 에도 막부의 수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17세기 초 전국시대를 끝내고 패권을 잡은 도쿠가와(德川) 가문이 에도에 막부를 세우면서 이전까지는 한촌이자 저지대 습지에 불과했던 이곳이 일본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올랐고, '시골 음식'은 '서울 요리'의 자리로 격상됐던 셈이다.

    도쿄 우에노에 있는 기요미즈 관음당 주위로 벚나무와 소나무가 늘어섰다.
    도쿄 우에노에 있는 기요미즈 관음당 주위로 벚나무와 소나무가 늘어섰다. 에도 시대 풍속화 곳곳에서 여러 식물을 찾아볼 수 있다. /글항아리
    잡초생태학 전공자가 쓴 이 책은 전국시대와 도쿠가와 막부의 일본 역사를 '식물'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며 음식·원예·환경의 숨겨진 역사를 흥미로운 필치로 파헤친다. 전장에서 칼을 휘두르며 피바람을 일으킨 당대의 무장들은 의외로 식물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꽃 마니아였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전용 약초원은 지금 도쿄식물원의 모태가 됐다.

    식물에 대한 관심은 전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성에 심은 소나무는 식량(송기떡)과 연료를 만들기 위한 군사용 식물이었고, 때론 말린 고사리로 대나무를 묶거나 토란 줄기를 돗자리 심으로 쓰는 방법으로 비상식량을 감춰 두기도 했다.

    '17세기 일본인들이 유럽에서도 놀랄 만한 식물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에도 시대가 완전한 재활용 순환형 사회'였다는 저자의 과장된 주장에선 언뜻 국수주의가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한양 인구가 20만명 정도였던 18세기 초에 에도는 이미 인구 100만명을 넘어선 대도시가 됐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많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물과 식량을 공급하고 배설물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존재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본 근대화 성공의 이유에 대한 하나의 단서로서 읽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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