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벚꽃 탈선

    입력 : 2017.04.15 03:02

    어수웅 Books팀장
    어수웅 Books팀장
    한강 다리 잘못 건너간 버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목요일(13일)에 있었던 실화. 성산대교를 건너가야 할 버스가 길을 잃고 양화대교로 들어섰다는 것이죠. 기사가 초보였을까요. 버스는 노선을 벗어나 여의도로 들어섰고, 사람들은 덕분에 벚꽃 구경을 하며 웃어넘겼답니다. 트위터에 뜬 영상에는 승객들이 당황하는 기사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있더군요.

    이번 주 Books 특집은 '벚꽃보다 좋은 책, 벚꽃 아래 읽는 책'입니다. 동네 책방 운영하는 시인 후배는 "이번 주, 서점이 벚꽃에 밀리고 있다"고 푸념하더군요. "감히, 이길 생각이었어?"라고 웃으며 구박했지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대책 없는 호승심(好勝心). 마침 눈에 띄는 신간이 드물었던 일주일이기도 했고요.

    책 좋아하는 다섯 명의 예술가·학자들에게 운(韻)을 뗐습니다. '벚꽃 탈선'이랄까요. 이현세·안대회·김연수·장강명·백희나. 자신의 장르와 상대방의 장르가 엇갈리고 포개지는 선택의 연쇄 작용이 시작됐습니다. '구름빵'으로 이름난 그림책 작가 백희나는 만화를 골랐죠. 일본 작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청명한 펜화가 연둣빛 봄을 아름답게 호명합니다. 만화가 이현세는 소설을 선택했어요. 그림만큼 글도 젊은 이 작가는 심리치료사를 찾은 신(神)의 능청과 익살을 전달합니다. 소설가들은 어떨까요. 김연수는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을, 장강명은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들고 벚꽃 아래 앉았군요. 러시아의 문호와 소설가만큼 글 잘 쓰는 미국 의사가 들려주는 인생무상(無常) 혹은 인생유상(有常). 성균관대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의 추천은 시(詩)입니다. 봄꽃에 마음 흔들려 친구를 찾았더니 한발 앞서 흔들린 친구는 열흘 전부터 집 비우고 꽃과 술에 취해 있었다는군요.

    트럼프와 시진핑, 북핵과 대선으로 어지러운 세상에서, 어쩌면 한가한 여기(餘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여의도로 '벚꽃 탈선'한 버스를 다시 떠올립니다. 동화 같은 이야기죠. 세상을 동화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동화 없는 삶이 얼마나 재미없을지는 구태여 언급하지 않으렵니다.

    편집국 창 밖으로 빗방울과 벚꽃잎이 난분분, 난분분입니다. 어쩌면 이번 주말이 정점이겠군요. 술잔이 아니라 벚꽃 아래 책을 기울이며, 봄의 절정을 누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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