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한국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경제 현안에 대한 일반 국민의 생각을 물어본 적이 있다. 질문 중엔 자금난에 허덕이는 대우조선해양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것도 있었다. 의견은 반으로 갈렸다. 47.7%가 '추가 자금을 넣어 회생시켜야 한다'고 했지만 '문을 닫게 해야 한다'는 응답도 43.9%나 나왔다.
추가 지원에 찬반이 팽팽한 국민과 달리 대선 주자들과 관료들은 지금 '정부 지원으로 대우조선을 살려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쏠려 있다. 대선 주자들은 지역 표심을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대우조선의 직·간접 고용 인력 3만5000명 외에 협력 업체까지 합치면 5만명의 일자리가 달려 있다. 가족까지 따지면 수십만 표다.
관료들은 한국 경제에 미칠 막대한 경제적 손실 얘기를 꺼낸다. 대우조선이 당장 문을 닫으면 우리 경제에 충격을 줄 최대 피해액을 두고 59조원(금융위)이라느니 17조원(산업부)이라느니 한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우리 경제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 결국 정치권이나 관료들의 말을 종합하면 '대우조선 덩치가 너무 커서 당장 문을 닫을 수 없다'는 논리다. 소위 '대마불사(大馬不死)'다. 일반 국민 사이엔 대마불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지만 정치권이나 관료에겐 어쩔 수 없는 대안 중 하나인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미국 정치권과 관료들도 '대마불사'를 인정한 전례가 있다. 미 정부와 의회는 AIG, 씨티 등 대형 금융회사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8000억달러(약 890조원)의 공적 자금을 조성했다. 당시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AIG가 파산한다면 금융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하고 실업률은 대공황 때처럼 25% 수준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지금 대우조선을 살리자는 논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
미국과 한국이 다른 점이 있다면 대마불사 구제 후에 '재발 방지 시스템'을 만드느냐는 것이다. 미국은 여러 차례 청문회를 거쳐 초대형 금융회사가 '대마(大馬)'가 되지 않도록 규모를 줄이고 비상금은 더 마련하게 하는 방향으로 갔다.
한국은 작년 9월 대우조선 자금 지원 책임을 두고 서별관 회의 청문회를 열었다. 그러나 호통만 있었지 재발 방지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 한국 경제엔 대마불사 후보가 곳곳에 숨어 있다. 가계 부채는 1300조원 넘게 불어나 '경고등'이 깜빡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처진 중후장대 제조업은 진로 전망이 어둡다.
윌리엄 더들리 미 뉴욕연방은행 총재는 최근 미국 금리 인상을 두고 "펀치볼(파티장의 술 주발)을 치우려는 게 아니라 (술 대신) 과일 주스를 조금 더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경제에 거품이 생기기 전 서서히 바람을 빼겠다는 얘기다. 대마불사 등장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을 줄이려면 정부와 정치권이 지금이라도 '대마(大馬) 조기 경보 시스템'을 만들어 위험을 미리 솎아내고 거품은 줄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