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록시땅'은 어떻게 20년 만에 세계 여성들을 사로잡았나

    입력 : 2017.04.15 03:02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록시땅' CEO 레이놀드 가이거

    프로방스, 그리고 자연주의
    엄선된 재료만 고집
    일회용품 천국 뉴요커들 단번에 사로잡아

    지역 중시한 게 적중
    한국에서는 화이트닝
    일본선 '체리블로섬 라인'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이젠 한국을 팔겠다
    인삼·대나무 재료 화장품 유럽 소비자들 사랑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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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코엑스에 있는 록시땅 매장은 145㎡나 된다. 이곳에서 만난 가이거 회장은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 SNS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시대일수록 매장은 색다른 경험과 기억을 안겨주는 곳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더 크고 새롭고 놀라운 형태의 매장을 곳곳에 짓겠다”고 했다. “과연 이런 대형 매장이 얼마나 성공할지 알 수 없지만 이 역시 우리에겐 짜릿한 모험이 되지 않을까(웃음)?” / 김지호 기자
    어떤 만남은 때론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놓는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업가 레이놀드 가이거(Reinold Geiger·69)씨는 1992년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서 천연 원료로 화장품을 만드는 올리비에 보송(Olivier Baussan·64)씨를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된다. 당시 44세였던 가이거씨는 이미 여러 사업에서 성공해 큰돈을 번 상태였다. 밑지는 경영이라곤 해본 적이 없었다.

    반면 보송씨는 위기에 처한 39세 청년이었다. 1976년 마르세유 지역에서 쓰러져 가던 비누 공장을 인수해 천연 에센셜 오일을 넣은 비누와 화장품을 만들어 팔던 그다. 회사 이름은 '록시땅(L'OCCITANE)'이라고 지었다. 문제는 그가 회사를 키우려고 벤처캐피털의 지원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겨났다. 경영난이 더 심각해졌고, 회사는 투자자들에게 곧 빼앗길 지경이 됐다. 가이거씨는 보송씨를 만나 그의 하소연을 듣고 또 그가 내민 비누와 화장품을 살펴보았다. 탁월한 비즈니스맨인 그는 순간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이건 된다!'

    가이거씨는 그렇게 보송씨와 손을 잡는다. 차근차근 록시땅 지분을 사들이며 투자를 시작했고, 1994년 록시땅 경영에 직접 합류했다. 1996년엔 록시땅의 정식 CEO로 취임했다. 그는 현재 록시땅그룹 회장이다. 올리비에 보송씨는 이제 제품 개발을 지휘하는 록시땅의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 활약한다. 경영은 전적으로 가이거 회장에게 맡기고 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만난 지 어느덧 25년, 록시땅은 이제 전 세계 40여개국에 매장을 거느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에는 2007년 서울 가로수길에 첫번째 부티크 매장을 열었다. 한국에 진출한 지도 10년이 된 것이다. 4일 가이거 회장을 서울 코엑스 매장에서 만났다. 그는 "30년 전 서울에 처음 왔었고 그 이후로도 열 번쯤 왔었는데, 올 때마다 그 변화에 놀라곤 한다"며 붉고 동그란 안경테를 가만히 고쳐 썼다.

    비록 지금 더딜지라도

    록시땅
    시어버터 핸드 크림. 전 세계적으로 2초에 하나씩 팔린다는 록시땅의 대표 상품이다. / 록시땅
    가이거 회장이 1994년 경영에 뛰어들면서 제일 먼저 시작한 건 분석이었다. 그는 "보송씨가 내놓은 제품은 이미 무척이나 훌륭했고, 그 제품에 담긴 철학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나는 경영자로서 그 제품을 어떻게 소비자에게 충실히 유통하고 전달할지를 고민해야 했다"고 했다. 공격적이고 대담한 경영으로 유명한 가이거 회장은 위기를 타개할 첫 방안으로 해외시장 진출을 생각해냈다. 1995년 중국 홍콩, 1996년 미국 뉴욕, 1997년 일본 도쿄에 매장을 잇따라 열었다. 처음부터 반응이 뜨거웠던 곳은 미국 뉴욕이었다. 매장을 열자마자 당초 목표로 잡았던 것보다 두 배가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가이거 회장은 "미국에서의 성공 덕에 록시땅이 서서히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됐다"고 했다.

    ―미국 시장을 택하셨던 이유가 있나요.

    "미국에 1년 정도 머물 기회가 있었어요. 그곳에서의 생활이 무척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그곳 사람들이 일회용품을 쓰고 비닐봉지를 마구 버리는 풍경을 보면서 걱정이 되기도 했었어요. 아침에 먹을 것을 사러 마트에 잠깐만 다녀와도 비닐봉지가 집에 몇 개씩 쌓였으니까요. '아, 이곳에도 조만간 자연주의 바람이 필연적으로 불 수밖에 없겠다' 했죠."

    일본과 홍콩 시장에선 그러나 초창기엔 생각보다 고전했다고 했다. 처음엔 누구도 매장문을 열고 들어오질 않았다. 아시아 시장에서 록시땅이라는 브랜드가 너무 낯설었던 탓이다. 가이거 회장은 섣불리 매장을 철수하지 않았다. 적자를 감수하면서 계속 가게 문을 열어놓았다. 그렇게 3년쯤 지나자 소비자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도쿄 매장에선 어느새 사람들이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왜 바로 철수하지 않으셨나요.

    "아시아 고객의 성향을 충분히 학습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요. 아시아의 소비자들은 무척 까다롭지만 한 번 제품을 맘에 들어 하면 무척 충성도가 높은 고객이 됩니다. 3년의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겁니다." 록시땅은 그렇게 10년의 적자를 딛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모험의 즐거움

    상생(相生)은 록시땅의 또 다른 키워드다. 각 나라의 지역 파트너와 손을 잡고 그 지역의 작물을 키워내는가 하면, 그 나라만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가이거 회장은 "그 나라를 위한 길이기도 하지만 그게 또 회사의 이익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고 했다.

    ―회사의 이익에 어떻게 도움이 되나요.

    "우리가 농장주 같은 지역 파트너를 잘 대우하고 대가도 충분히 잘 지불하면 그들은 우리를 최선을 다해서 돕거든요. 가령 갑자기 주문량이 밀려들어서 재료가 2~3배씩 필요해질 때가 있어요. 이럴 때 평소 신뢰를 쌓아놓으면 파트너들은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도와주거든요. 이들을 믿고 가는 게 결국 우리에게도 남는 장사인 거죠(웃음)."

    ―로컬 프로젝트를 믿어주는 것도 때론 모험일 텐데요.

    "모험하는 재미 없이 사업을 할 수 있을까요(웃음). 게다가 그들의 아이디어는 언제나 제 기대를 뛰어넘어요. 가령 한국에서 화이트닝 제품을 내자고 요청했었어요. 반신반의했지만 밀어줬는데, 아시아에서만 잘된 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히트를 쳤어요. 일본에선 또 4월 말 벚꽃 시즌에 팔 제품을 따로 만들어달라고 했어요. 그게 '체리블로섬 라인'인데, 일본에서만 잘 팔리는 게 아니라 이젠 15년째 전 세계 베스트셀러죠."

    한국, 그 또 다른 가능성

    록시땅그룹은 2012년 '에르보리앙(Erb orian)'이라는 브랜드를 시작했다. 인삼·대나무 같은 우리나라 전통 약초에서 추출한 성분을 바탕으로 만든 프랑스 화장품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중국 홍콩과 싱가포르, 우리나라에 매장이 있다. 가이거 회장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독특한 정체성과 프랑스 화장품의 기술력을 결합한다면 분명 흥미진진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유럽 소비자를 설득시키기엔 어려운 부분이 많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복잡하고 쉽지 않지만, 그래서 또 재밌죠(웃음)."

    가이거 회장은 다시 붉은 안경테를 고쳐 쓰며 싱긋 웃었다. "록시땅은 지난 25년 동안 프로방스의 가장 유명한 홍보대사로 자리매김했어요. 십년쯤 후엔 에르보리앙이 삼성을 능가하는 한국의 홍보대사가 돼 있을지도 모르죠. 그때 다시 한 번 인터뷰할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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