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매운 냉면

    입력 : 2017.04.15 03:02

    [마감날 문득]

    냉면의 계절이 왔다. 아니 오려고 한다. 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달력을 냉면에 맞춰놓고 산다. 냉면에 너무 얽혀, 뇌가 풀어진 면발처럼 어지럽다.

    서울경찰청에 출입하던 여름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경찰관 두 명과 냉면 먹으러 가기로 의기투합했다. '함흥의 아들'을 자임하던 나는(부모님이 모두 함흥 출신이다) 함흥냉면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목포 출신 경찰관은 냉면을 왜 먹어야 하느냐고 했고 충청도 출신 경찰관은 그냥 순대나 먹자고 했다.

    어쨌든 서울 동대문 유명한 매운 냉면집에 셋이 갔다. 엄청 맵다고,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맵다고 했다. 셋이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경찰관 중 한 명이 말했다. "칫, 매우면 얼마나 맵겠어. 매워 봤자지. 지는 매운 건 다 먹어 봤슈. 뭔디 냉면이 맵다고 못 먹어."

    냉면집에 당도했더니 메뉴가 6가지였다. 아주 매운 맛, 매운 맛, 보통 맛, 덜 매운 맛, 거의 안 매운 맛, 하얀 맛. 나는 거의 안 매운 맛 물냉면을 시켰고 목포 출신 경찰은 보통 맛 물냉면을 시켰다. 잘난 척하던 경찰관은 잘난 척하며 매운 맛 비빔냉면을 시켰다.

    보통 맛을 시킨 사람은 두 젓가락을 먹더니 말을 멈췄다. 말을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거의 안 매운 맛 물냉면을 먹던 나는 조용히 있었다. "맛은 때로 폭력이다"라는 문장만 간직하고 있었다.

    다들 반 그릇도 못 비우고 나왔다. 매운 맛을 먹은 사람이 길에 주저앉았다. 평소 말수가 많던 사람인데 한 마디 말을 안했다. 매운냉면집에 소주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장충동 족발집에 가기로 했다. 족발집에서 그 잘난 척하던 경찰관은 족발도 소주도 먹지 않았다. 요인 경호에 실패한 사람처럼 그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다음 날 출근하니 매워 봤자지 했던 경찰관은 결근했다. 전화해 보니 화장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이미 스무 번째 변기에 앉아 있다고 했다. 매운 냉면은, 진짜 맵다. 캡사이신을 통째로 들이켠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이 음식인지 아닌지는 각자 판단 영역이다.

    매운 냉면 때문에 결근했던 경찰관에게 오랜만에 전화했다. 지금 동대문서에 발령받아 근무한다고 했다. 매운 냉면집 관할 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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