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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식당', 세상에서 제일 속 편한 '자영업' 체험기

  • 글/구성 : 뉴스콘텐츠팀 이수진

    입력 : 2017.04.14 13:53

    '로망'의 대리 실현 전문가, 나영석 PD

    나영석 PD(이하 나PD)의 새 프로젝트가 또 성공할 모양이다. 발리 어느 아름다운 섬에 그림 같은 집을, 아니 식당을 짓고 한식을 파는 것. 기가 막힌 '로망'이다. 역시 '로망 대리실현 전문가'답다. 나PD가 구현한 로망의 리스트를 살펴보자. 황혼의 나이에 맘 맞는 친구끼리 유럽여행 가기, 배낭 하나 딱 짊어지고 무작정 해외로 떠나기, 자연 속에 파묻혀 온갖 산해진미로 밥 해먹기.

    왼쪽부터 '꽃보다 할배', '꽃보다 청춘', '삼시세끼'
    '윤식당'의 기획은, 나PD가 앞서 이미 보여주었던 '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 시리즈에서 여행과 요리를 뽑아내 버무리고 거기에 '자영업' 체험이라는 새 요소를 가미해 완성되었다. 특히 도시에 사는 '월급쟁이' 직장인들이라면 한번쯤이 아니라 매순간 꿈 꾸고 상상해보는 '일탈, 사치, 낭만' 등이 '윤식당'에 결집돼 있다. 자금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마냥 부족하기만 한 시청자들은 그 로망의 끄트머리라도 잡는 심정으로 TV 앞에 앉는다. '윤식당'은 그렇게 시청률 10%를 훌쩍 넘겼다.
    '윤식당'의 멤버. 신구, 윤여정, 이서진, 정유미

    '윤식당'의 핵심은 '떠남'이 아니라 '장사'에?

    그런데 '윤식당'이 나PD의 전작들과 비교해서 사뭇 다른 점이 눈에 띈다. '윤식당'의 방점은 '떠난다' 보다는 '장사한다' 쪽에 좀 더 진하게 찍혀 있는 것이다.

    '윤식당'에는 나PD가 즐겨 함께 일했었던 낯익은 게스트들로 꾸려진다. 외국 땅에서 한식 장사를 벌인다는 것은 다소 낯설고 도전적인 시도이기 때문에 익숙하고 호흡이 이미 잘 맞는 출연자를 섭외해야 했을 거다. 배우 정유미만 처음 나PD의 예능세계로 합류했으나 그녀는 착하고 모나지 않은 캐릭터이니 섭외에 별 고민은 없었을 것이다.

    '윤식당'이 선택한 메뉴는 외국인들에게 두루 거부감 없는 불고기. 단 세개의 메뉴(불고기 라이스, 불고기 누들, 불고기 버거)로 일단 시작했다. 음식 만들기도 열심히 연습 해보고 메뉴 개선을 위해 멤버들끼리 전략 같은 것들도 서로 나름 열 띠게 나눠본다. 장을 보고 와 식당에 출근해, 야채를 썰어두는 등 재료 준비를 부지런히 해 놓는다. 그 와중에 주방을 닦고 또 닦으며 식당의 첫 오픈을 기다린다.

    '윤식당' 중 한 장면

    '윤식당'이 처음 오픈을 하기까지 출연자들이 여러 준비를 하는 모습이 물 흐르듯 쭉 이어진다. 예능 프로그램이니까 시청자들을 웃기는 데 도움이 될만한 인위적인 장치들을 사이사이 껴 넣을 수도 있는데 신구의 깜짝 등장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이토록 잔잔한 예능을 홀린 듯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새 집중해 보고 있음을 시청자들은 깨닫는다.

    "장사하는 사람 기분이 이렇겠구나"

    출연자들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웃겨야 한다는 사명감 따위 전혀 없어 보인다. 그들은 오직 장사를 잘 해야 한다는 한 가지 목표만 있는 것 같다. 마치 진짜 자영업을 막 시작한 '초짜' 사장님처럼. 음식이 맛있어야 한다는 굳은 결의와 손님이 안 보일 때는 초조함을 가감 없이 내보인다. 윤여정은 끝내 "장사하는 사람 기분이 이렇겠구나"라고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배우로 50년을 일 해온 윤여정에게 '자영업'의 세계는 신세계 그 자체였으리라.

    '윤식당'의 매력은 낯선 환경을 맞이하는 생경한 느낌을 시청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에서 나온다. 그 매력이 이 잔잔한 예능 프로그램을 홀린 듯 계속 보게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윤식당' 중 한 장면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들이 전하는 사사로운 이야기

    그런데 '윤식당'을 계속 보고 있다 보면 그보다 더 색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시청자들이 관찰하는 대상이 신구·윤여정·이서진·정유미 이 네 주인공에서 벗어나, 식당에 들르는 다양한 여행객들로 옮겨간다는 점이다.

    '윤식당'은 네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지만 또 못지 않게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들이 나누는 대화도 비중 있게 다룬다. '윤식당'에서 내놓는 한국식의 음식에 대해서 평가하는 이야기, 장사에 서툴러 보이는 출연자들을 보며 나누는 감상평, 가족 단위 손님들이 나누는 그들만의 소소한 에피소드들.

    내게는 하등 의미도 없는, 난생 처음 보는 타인의 사사로운 이야기가 '윤식당'이란 프로그램 안에 제법 크게 자리잡은 것이다. 나중에는 네 주인공의 이야기보다 타국의 낯선 손님들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지는 '주객전도' 지경에도 이르고 만다.

    '윤식당' 중 한 장면

    완벽한 멍석 위에서 생계 걱정하지 않고…

    그런데 한편 이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자괴감'이랄까, '무기력감'이랄까. 여하간 그 비슷한 감정이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윤식당'이 보여주는 '로망'은 실감나지만 결국 '실감나는 꿈'일 뿐이라서 그렇다.

    '윤식당'의 네 멤버가 이 색다른 창업을 위해 한 일은 12일 정도의 비싼 시간을 내어주는 것과 불고기 볶는 법을 배우는 것, 그리고 약 20인분 정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준비해 두는 것과 주스를 만들기 위해 믹서기 사용법을 익히는 것 정도다.

    사실 이렇게 명망 있는 네 배우들이 12일 동안이나 고된 촬영을 이어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노력을 너무 폄하해 말한 것일 수도있다. 하지만 보통의 자영업자가 실제로 창업을 하며 겪는 어려움에는 훨씬 미치지 않는다는 것 역시 확실하다.

    제작진은 출연자들에게 한식전문 유명 셰프의 속성 과외도 받게 해주고 그림처럼 아기자기한 식당을 출연자들이 잠을 자는 새벽 동안 뚝딱 지어주기도 한다. 숙소는 그 일대에서는 최고급이라고 해도 될만한 아름답고 정갈한 곳으로 마련해주었고 충분한 휴식 시간도 갖게 해준다. 결정적으로 '윤식당' 사장님이나 직원들은 장사에 생계가 걸려 있지 않다. 하루에 20인분 정도만 팔아도 괜찮은 것이다.

    '윤식당' 중 한 장면

    그래도 나PD의 '그럴듯한 그림'은 훌륭한 '대체 로망'이다

    뭐 '체험, 삶의 현장'도 아니고, 출연자들을 실제로 고생시켜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도시 노동자들의 로망을 대리 실현해 주려면 어느 정도 그럴듯한 '그림'은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괴감' 따위가 느껴지고야 마는 이유는 "장사하는 사람 기분이 이렇겠구나"라는 식의 '쉬운 공감' 때문이다. 그 정도의 체험을 갖고 '소규모 자영업자'의 애환을 벌써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엔 제작진들이 깔아준 멍석이 감탄할 만큼 환상적이다.

    시청자들을 내내 사로잡을 만한 잔잔하고 소소하지만 강한 매력의 '윤식당'. 이 프로그램이 쏟아내는 이야기는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시청자를 홀리고 말았다. 제작진들이 깔아준 멋들어진 멍석 위에서 그래도 나름 고군분투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기특하고, 오가는 타국의 여행객들도 사사롭지만 흥미롭기만 하다. 이번에도 나의 로망은 나영석 PD가 보여주는 '그럴듯한 그림'으로 일단 대신하고 '킵'해두어야겠다. 슬프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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