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19대 대통령선거 특집

패배·눈물·환호… 대선 주자들의 4년 전

문재인·안철수·심상정은 지난 대선에서도 지금처럼 대권을 꿈꿨다.
하지만 문재인은 패배했고, 안철수와 심상정은 눈물을 머금은 채 꿈을 '양보'했다.
그 이후 4년 4개월, 당시의 그들과 지금의 그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 구성 및 편집=뉴스큐레이션팀

    입력 : 2017.04.24 08:07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선거는 축제인 동시에, 주기적으로 치러야 하는 '과제'다.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 국민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후보자들의 면면을 살피고 검증한다. 직접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도 치밀하게 준비하는 건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은 5년 후 대선을 미리 내다보며 일찍부터 세력을 모으고 발판을 다진다. 

    유례없이 7개월이나 빨리 치러지게 됐지만, 이번 대선 역시 '준비된 자'들의 각축전이다. 대선 후보 5명 중, 지난 18대 대선에 도전장을 던졌던 이가 3명이나 된다. 4년 4개월간 절치부심하여 돌아온 이들과 새로이 대선판에 뛰어든 이들. 주요 대선후보 5명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봤다. 

    *기사 내에서 대선 후보들의 순서는 기호 순이며 직책은 생략하였음. 단 상황 설명에 있어 필요한 경우는 기재.

    문재인

    (좌) '대선 패배' 인정 기자회견을 하는 문재인. (우)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 선출된 문재인. /조선 DB

    그때 그 사람

    "패배를 인정합니다"
    박근혜 제18대 대통령의 승리가 확실시되던 2012년 12월 19일 밤 11시 50분, 문재인은 고개를 숙였다. 박근혜 당선인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하는 한편, "대선 실패는 나의 실패이지 새정치의 실패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박근혜와 문재인의 최종 개표 결과는 51.55% 대 48.02%. 근소한 차이였어도 패배는 패배였다.

    문재인의 패배 후 민주당은 크게 흔들렸다. 그를 지지했던 의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하는 반면, 문재인의 책임론을 거론하는 부류도 있었다. 이들은 "선거 때 뭐하다가 이제 와서 우느냐"고 했다. 한편 문재인은 대선 후 한동안 공식일정 없이 자택과 고향인 경남 양산을 오가며 지냈다. 하지만 그의 '칩거'는 그리 오래지 않아 끝이 났다. 대선이 끝난 지 열흘 만에 한진중공업 자살 노동자의 빈소를 찾으며 첫 외부활동을 재개했고, 이어 새해 첫날에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문재인이 2017년 대선 출마를 시사한 건, 18대 대선 패배 1년이 지난 2013년 12월. 그는 자신의 회고록 '1219, 끝이 시작이다'를 발간하며 "2017년엔 반드시 염원을 이루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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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가 달라졌나?

    (좌) 2012년 12월, 문재인의 유세 현장에 등장한 안철수. (우) 2017년 4월, 국회 예결위장에서 마주친 문재인과 안철수. /조선 DB

    └ 安과의 관계
    18대 대선 개표방송 당시, KBS는 박근혜의 주무기(主武器)를 '수첩', 문재인의 주무기를 '안철수'라고 표현했다. 당시의 문재인에게 안철수는 그 정도로 큰 존재였다. 문재인과 함께 대선 후보였던 안철수는 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11월 23일, 극적으로 후보 사퇴를 하며 문재인에게 힘을 실어줬다. 대선을 나흘 앞두고는 안철수가 문재인의 유세 현장에 '깜짝' 등장해 목도리를 둘러주고 포옹까지 하는 훈훈한 장면도 연출했다.

    4년 4개월이 지난 지금 역시 문재인에게 안철수는 여전히 큰 존재다. 다만 그때와 같은 조력자가 아닌, 자신의 대선 행보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됐을 뿐이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18대 대선 이후, 단일화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잡음이 불거지며 사이가 벌어졌다. 안철수는 자신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서 "동물도 고마움을 안다"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최근에는 공식 행사장에서 서로 눈길조차 나누지 않는 사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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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준표
    (좌)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홍준표. (우) 도지사직을 사퇴하며 눈물을 흘리는 홍준표. /조선 DB

    그때 그 사람

    "공직생활 접는다" 했지만, 8개월 만에 부활

    "30년 공직생활을 마감합니다. 보궐선거에도 나가지 않고 재야에서 활동할 계획입니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낙선한 홍준표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내리 4선을 한 자신의 지역구 동대문구을에서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패한 것이 매우 뼈아팠던 터였다. 하지만 8개월 뒤인 2012년 12월 19일, 홍준표는 박근혜와 함께 꽃가마를 타는 인물이 됐다. 당시 18대 대선과 같은 날 열렸던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것이다. 이로써 정계 복귀의 발판을 마련한 홍준표는 2014년, 60%가 넘는 지지율로 경남도지사 재선에도 무난히 성공한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품 때문일까. 홍준표는 경남도지사로 재임하는 중에도 '대권의 꿈'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2017년 대선에 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그는 "대권 꿈이 없다고 하면 위선", "도지사가 대선 후보가 되면 경남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나" 등의 답변을 했다. 그리고 2017년, 자유한국당의 대선후보가 된 홍준표는 마침내 도지사 직을 내려놓는다. 4월 10일 밤 11시 57분, 대선후보들의 공직 사퇴 시한을 3분 남긴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꼼수 사퇴'라고 비난했지만, 본인은 '세금 수백 억이 낭비되는 보궐선거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당당히 밝혔다. 사퇴 선언 다음날 열린 퇴임식에서 홍준표는 눈물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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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가 달라졌나?

    (좌) 2015년 3월, 무상급식을 놓고 설전을 벌인 문재인과 홍준표. (우) 최근 화상 인터뷰에서 신경전을 벌인 홍준표와 손석희. /조선 DB

    └ 여전한 '스트롱맨(strong man)'

    '소신 있는 발언'이 트레이드 마크인 홍준표는 한결같이 강한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이었다. 이 때문에 도지사 재임 중 현재의 경쟁자인 문재인, 안철수와도 여러 번 부딪혔다. 먼저 문재인(당시 야당 대표)과는 무상급식을 놓고 설전을 벌였는데, 이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벽 보고 얘기하는 느낌"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안철수에 대해서는 "새정치에 내용 없다, 경남에는 '안풍(安風)'이 없다"며 일갈했다.

    손석희 현 JTBC 사장과의 '친분'(홍준표는 최근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 중 발언 논란이 일자 '친분이 있어서 그랬다'고 해명한 바 있다)은 2012년에도 드러난 적이 있다. 당시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던 MBC 라디오에 출연한 홍준표가 "MBC 요즘 문제 많다"는 말을 반복했던 것. 이후 한 달 뒤에는 똑같은 프로그램에서 '손석희 같은 사람을 MBC 사장 시켜야 한다'는 돌발 발언을 해 모두를 당황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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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좌) 시민들에게 투표 참여를 호소하는 안철수. (우) 국민의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안철수. /조선 DB

    그때 그 사람

    "다들 투표는 하셨어요?" 짧은 인사 후 미국行
    대선 후보를 사퇴한 안철수는 선거 전날까지 문재인의 지원 유세에 나섰다. 그러면서 "도움을 줄 만큼 다 줬다"며 소회를 밝혔다. 18대 대선날이 밝자 오전 9시경 부인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와 함께 투표를 마쳤다. 이후 그가 향한 곳은 공항이었다. 안철수 측은 대선이 끝나는 직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출국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혀왔었다. 문재인이 이기든 지든, 그와 함께했던 안철수에 대해 여러 말이 나올 것을 고려해 한 결정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대선 결과를 알게 되겠다'는 기자의 질문에는 "잘텐데 뭐…"라고 답했다.

    안철수는 미국에 석 달가량 머물렀다. 이후 대선 다음 해 3월에 귀국해, 4월에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노원병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결과는 60.4%로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 이것이 2017년 대선을 향한 안철수의 첫걸음이었다. 18대 대선 때 출마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 '간철수'라는 별명을 얻었던 안철수는 19대 대선은 일찌감치 출마를 공식화했다. 그는 2015년 6월, 한 라디오 방송에서 대선에 나갈 생각이 있다고 하며 "하나씩 뚜벅뚜벅 만들어가며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6개월여 뒤, 자신이 몸담고 있던 새정치연합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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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가 달라졌나?

    안철수의 이미지 변화를 코믹하게 표현한 조선닷컴 뉴스툰. /여빛 작가

    목소리
    4년 4개월 전, 입에 손을 갖다 대고 가는 목소리로 얘기하던 그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안철수는 지난 대선에 비해 가장 획기적으로 변한 후보다. 목소리가 특히 그렇다. 갑자기 변한 목소리에 다들 얼마나 놀랐는지, 최근까지 '안철수 목소리'를 분석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도대체 어떻게 득음한 것이냐'에 대한 그의 대답은 독학. 그러면서 "자기 자신도 못 바꾸면 나라를 바꿀 수 없다"는 대선 후보다운 코멘트도 덧붙였다. 실제 안철수 목소리를 들은 대다수 소리 전문가들은 '독학이 맞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안철수의 연설법이 다른 연설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이 독특하다는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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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로부터) 최장집, 송호창, 법륜, 금태섭, 윤여준. /조선 DB

    떠나간 멘토들
    안철수라는 인물의 주변도 달라졌다. 최장집, 금태섭, 송호창, 법륜, 윤여준 등 한때 '安의 사람들'을 상징하던 인물들이 지금은 없다. 먼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안철수 싱크탱크 내부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잘 내지 못했다는 무수한 설(說)을 남기며 떠났다. '안철수의 입'이나 다름없던 금태섭 변호사는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대변인이 됐으며, 송호창 전 의원은 안철수의 국민의당 입당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륜 스님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역시 '옛 안철수 멘토'라는 타이틀만 갖고 있을 뿐이다.

    유승민

    (좌) 2015년 4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우) 2017년 4월 2일, 경북 의성군 의성읍 의성공설시장을 찾아 상주·의성·군위·청송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김진욱 후보 지원유세 중인 유승민. /조선DB, 연합뉴스

    그때 그 사람

    대통령과 각 세우고, 야당에 박수 받은 '원조 친박'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할 당시 유승민은 새누리당의 의원 한 명에 불과했다. 한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며 '원조 친박(親朴)'이라고도 불린 그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공약과 인선 등에 쓴소리를 내뱉은 유승민은 어느새 '멀박(멀어진 친박)', '까박(까칠한 친박)', '쓴박(쓴소리하는 친박)' 등으로 분류됐다. 박 전 대통령의 주변 인물을 향해 '얼라들(어린애들을 일컫는 사투리)'이라 쏘아 붙이는가 하면 "박근혜 정부가 국민들 기대에 못 미친다"고 냉정한 평가를 하기도 했다.

    유승민과 박근혜 청와대의 대립이 절정에 달한 건, 그가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하던 2015년 무렵이다. 유승민은 원내대표가 된 후 첫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박근혜 정부 정책의 문제점은 지적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칭찬하는 '파격' 연설을 선보였다. 이후 결정적으로 '국회법 개정안'으로 충돌하며 유승민은 쫓겨나듯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사퇴한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대통령까지 개입해 '유승민 사퇴'가 정치권을 넘어 국민적인 이슈가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승민이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자 지지율이 급등했는데, 야권 쪽의 지지가 높아진 결과였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그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제치고 차기 여권 대선주자 1위를 차지했다.

    ▷관련기사 野黨이 박수쳤다, 유승민의 '파격 연설'

    뭐가 달라졌나?

    (좌) 2011년 4월 4일, 대구 달서구 세인트웨스튼 호텔에서 열린 대구연구개발특구 출범식에 참석한 유승민 의원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우) 2015년 6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정치권과 새누리당을 비난한 것과 관련,“박근혜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면서 공개 사과하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조선DB

    └ 보수와 결별한 보수

    박근혜와 유승민의 '10년 인연'은 이들이 각각 대통령과 원내대표로 있으면서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박 전 대통령은 과거 한나라당 대표로 있을 때, 당시 초선이던 유승민 의원을 '삼고초려'까지 하며 자신의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하지만 2015년, 박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유승민을 겨냥해 "자기 정치를 하지 말라" 비판하고 국민들에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 호소했다. 이후 유승민은 "대통령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대통령과 그의 관계는 회복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의 충돌에 대해,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이들이 정면 대결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심상정

    (좌) 대선 후보 사퇴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심상정. (우) 정의당 대선 후보로 출마 선언을 하는 심상정. /조선 DB

    그때 그 사람

    "이석기·김재연 제명 못 시켜 죄송합니다"

    18대 대선이 있기 6개월여 전, 심상정 당시 통합진보당 원내대표는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강기갑·심상정 등 당 지도부가 추진하던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제명안이 부결됐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당은 크게 흔들렸다. 당사자인 이석기 전 의원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심상정이 청한 악수를 "됐다"며 거부했다. 그해 9월, 강기갑, 권영길, 노회찬, 유시민 등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탈당하며 당은 분열되고 만다. 탈당 의원 중에는 심상정도 있었다. 이후 그는 진보정의당을 창당하고 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다.

    하지만 심상정의 첫 대선 도전은 지지율이 1%도 되지 않는 등 녹록지 않았다. 통합진보당의 분당 과정에서 보인 내홍이 부진 요인 중 하나로 꼽혔다. 심상정은 결국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한 달여 만에 후보직을 내려놨다. 사퇴 기자회견에서 그는 눈물을 머금은 채 "철탑 위에 매달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눈에 밟힌다"며 "단일화를 위한 중도사퇴는 제가 마지막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자고 호소했다.

    ▷관련기사 심상정, 대선 후보직 사퇴…"단일화 위한 중도사퇴, 제가 마지막 돼야"

    뭐가 달라졌나?

    (좌) 2012년 3월, 손을 맞잡은 당시 통합진보당의 심상정·이정희 공동대표. (우) 2012년 10월, 통합진보당 의원들과 이정희를 못 본 체하고 지나치는 심상정. /조선 DB

    └ 이정희와의 결별

    심상정의 가장 큰 변화는 주변 인물이다. 2011년, 통합진보당이 창당되던 날 심상정은 이정희 당시 대표의 손을 번쩍 들며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채 1년도 되지 못해 이들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심상정은 4년 전에 이어 이번에도 대권에 도전하는 한편, 이정희는 해산된 정당의 대표가 되어 오랫동안 침묵하는 처지가 됐다.


    누군가를 파악하는 데 있어, 그 사람의 '현재' 모습만큼 중요한 게 '과거' 모습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4년 4개월. 대선주자들이 걸어온 길을 훑어보는 것이, 다가오는 대선날 현명한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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