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6월 18일 자 조선일보에 '日(일본)에서 한국현대미술 붐'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김환기, 이우환, 김창렬, 박서보, 윤형근, 권영우 등 당대 미술계를 주도하던 화가들 사진과 함께다. 기사는 일본인들이 한국 현대미술에 관심을 보인 첫 계기가 1975년 도쿄화랑에서 열린 '백색전(白色展)'이라고 적었다. 정확히는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전(展)이다. "서구의 발상과는 다른 내면의 흐름을 표출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은 백색전은 요즘 서구 컬렉터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한국 단색화의 시초가 됐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이달 30일까지 열리는 권영우(1926∼2013)의 'Various Whites(다양한 흰색들)' 전시는 70년대 일본열도를 사로잡은 바로 그 '백색'을 볼 기회다. 권영우가 1970~19 80년대 집중적으로 제작한 한지 연작 30점이 내걸렸다.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권영우는 붓과 먹을 버리고 한지로만 작업했다. 손톱, 칼, 송곳 같은 도구를 이용해 패널에 겹쳐 바른 한지를 뜯고, 찢고, 자르고, 붙이며 '만드는 추상'을 고집했다. 하얀 물보라 같기도, 조개껍데기 혹은 바람결 같기도 한 화폭은 인생무상, 혹은 달관을 느끼게 한다. 권영우의 한지 작업을 화단에서는 '단색화'와 별도로 '백색화'라고도 부른다. 지난달 열린 제5회 아트바젤홍콩은 새로운 조명이 필요한 작가의 작품을 집중 전시하는 '캐비닛' 섹터에 권영우를 초청했다.
둘째 아들 오현씨는 "돈 못 버는 아버지 대신 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던 어머니가 하시던 푸념이 가끔 생각난다"고 회고했다. '남들처럼 사군자를 그리거나 강에 배 한 척 띄워놓고 선비가 낚시하는 그림을 그릴 것이지 만날 한지랑 뜯고 찢으며 싸우니 원.' 중앙대 교수로도 재직했지만 작가와 교수를 겸하는 건 비양심적인 일이라며 쉰두 살에 사표를 내고 파리로 날아갔다.
'독립군 스타일'이었다는 아들 기억대로 권영우는 화단의 이단아였다. 서울대 동양화과 1회 졸업생이지만 1958년 초현실주의적 화풍의 '바닷가의 환상'으로 국전에서 장관상을 받으며 파란을 일으켰다. 1965년 도쿄비엔날레, 1973년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초청됐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에 작품이 소장됐다. 이번 전시엔 권영우의 첫 실험작 '바닷가의 환상'도 선보인다. 아들 오현씨가 아버지 화업을 정리하던 중 경매에 나온 이 초기작을 구매했다.
아들이 아버지의 손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른손잡이인데도 일부러 왼손으로 식사하시고 젓가락질하시며 숙달시키셨지요. 오른손 다치면 왼손으로 그려야 한다고, 그림 못 그리면 당신이 이 세상 살 이유가 없다면서요." (02)735-8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