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팝 컬처] 집 지키던 개를 추억함

    입력 : 2017.04.13 03:13

    어릴 적 우리 집 지키던 똑똑하고 잘생긴 셰퍼드, 씩씩하게 잘 지냈는데
    마당 있는 집 줄어든 애견 인구 천만 시대… 애완견 '아가'들이 대세

    한현우 주말뉴스부장
    한현우 주말뉴스부장
    어렸을 적 우리 집에는 커다란 셰퍼드가 있었다. 어찌나 똑똑하고 잘생겼는지 집에서 키우는 개로는 단연 최고였다. 가족은 물론 구면(舊面)인 사람에겐 공손히 두 발 모아 엎드리고 낯선 사람에겐 단박에라도 물 것처럼 사나운 것이 쏙 마음에 들었다. 그 시절 개를 키운 이유는 단 하나, 집을 지켜주기 때문이었다. 애완견(愛玩犬)이 아니라 보안견(保安犬) 또는 경비견(警備犬)이었다.

    우리 집 대문에는 '개 조심'이라는 문구가 늘 붙어 있어 특히 잡상인들이 유념해야 했다. 그들이 초인종을 누를라치면 대문 틈 사이로 누렇고 시커먼 셰퍼드가 달려들어 "크르릉, 왕왕(안 사요, 안 사)!" 하고 소리쳤기 때문이다. 그럴 때 "메리! 조용히 해!"하고 지시하면 셰퍼드는 즉각 정위치로 돌아가 집사(執事)처럼 늠름하고도 점잖게 앉아 있곤 했다(그때 개들 이름은 대개 메리 아니면 해피였다). 책 좋아하는 삼형제를 공략하러 종종 들르던 출판사 외판원들은, 우리 집을 '개 있는 파란 대문집'이라고 부르곤 했다.

    마당 넓은 집으로 이사 간 뒤로는 늘 개가 두 마리 이상 있었다. 대문 지키는 개와 쪽문 지키는 개였다. 대문은 메리와 그 자손들이 대대로 지켰고 쪽문은 스피츠나 똥개 차지였다. 집 지키던 개들은 크기나 생김새와 상관없이 잘도 짖었다. 어떤 이웃도 한밤중에 옆집 개가 짖는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옆집 개가 짖으면 우리 집 개도 덩달아 짖었으니까. CCTV 없던 시절 담 넘으려던 도둑을 개들이 죄다 쫓아냈으니까 말이다.

    부모님이 알아서 다 하셨던 것일까. 그때는 개가 새끼를 낳아도 무슨 예방접종을 한 기억이 없다. 개에게 사료를 먹이지도 않았다. 개는 늘 우리가 먹고 남은 음식을 잡탕으로 끓여 찌그러진 양은그릇에 부어주면 헐떡헐떡 씹지도 않고 먹었다. 그런데도 동물병원에 간 기억이 거의 없다. 여하튼 그때 개들은 사람이 먹는 것과 먹고 남긴 것, 먹지 않는 것을 골고루 다 먹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개를 씻길 때는 수돗가에서 빨랫비누로 목욕시켰다. 개샴푸는커녕 세숫비누도 쓰지 않았다. 새끼 강아지일 때 아니고는 집에 들이지도 않았다. 가끔 목줄이 풀린 개가 집에 들어올 때가 있었는데, 어머니는 반사적으로 빗자루나 쓰레받기를 들고 내쫓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놈, 어디라고 여길 들어와?" 집에 들어오는 건 언감생심(焉敢生心), 개는 그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당에서 집을 지키는 존재였다.

    주말이면 '놀아줄개'나 '카페개네' 같은 애견 카페에 가서 몇 시간씩 놀다 오는 딸이 "아빠, 우리도 강아지 키워요" 하고 조를 때면 "개는 마당에서 키워야 돼.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면 키우자"고 말해왔다. 그 뒤로 아이는 "그럼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자"고 조를 만큼 개를 좋아했다. 서울에서 마당 있는 집에 살기가 어디 쉬운가. 그 많던 마당 있는 집들은 집 지키는 개들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 문득 작은 강아지를 입양키로 했다. 잘 짖지 않고 영리하며 순해 '초보자가 키우기 쉬운 품종'으로 분류되는 개다. 아이의 강아지 인형보다도 작다. 다 커봐야 3㎏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애견숍에 가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개 때문에 절대로 남에게 폐 끼치면 안 돼. 일체의 염색, 옷 입히기, 이상하게 털 깎기, 쓸데없는 수술도 전부 안 돼. 개는 개처럼 키워야 돼." 그러면서도 요즘 시대에 개를 과연 개처럼 키울 수 있을까 스스로 의문스러웠다.

    마음에 드는 개를 정하니 '입양계약서'라는 걸 쓰라고 했다. '아가에게 사람 먹는 걸 주면 절대 안 됩니다' '주기적으로 아가의 귀를 세정제로 씻어주세요' '개샴푸를 쓰지 않으면 피부병에 걸려요' 같은 주의사항이 빼곡했고 맨 밑에 숙지했다는 뜻의 사인을 해야 했다. 개샴푸와 개빗, 개발톱깎이, 개장난감, 개사료까지 한 아름 챙겨서 '아가'와 함께 집에 왔다.

    주먹보다 조금 더 큰 강아지가 이제 막 돋기 시작한 이빨로 옷을 물어 당기고 손을 깨문다. '가라랑' 하고 제법 울음소리도 낸다. 개를 데려온 첫날 밤, 아이는 개가 콧물이 나는 것 같으니 당장 병원에 데려가자고 했다. 나는 "개는 기원전부터 있던 동물이야. 그렇게 허약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하고 대답했다. 아이는 개가 불쌍하다고 울었다. 열을 재보니 정상이고 사료도 잘 먹기에 괜찮을 것 같았지만 슬그머니 개 방석 담요 사이에 핫팩을 넣어줬다. 아무리 봐도 마당에서 집 지키던 메리처럼 듬직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견인구 1000만 시대, '집 지키는 개'는 추억 속으로 꼬리를 살랑거리며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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