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은 포장 않고 바구니에… 빨대는 씻어서 다시 써요

    입력 : 2017.04.12 03:02

    [포장재 사용 최소화하는 '프리사이클' 매장 국내 첫선]

    곡물·견과류 원하는 양만 팔아… 손님들, 집에서 그릇 챙겨와 구입
    "단순 재활용인 '리사이클' 넘어 쓰레기 발생 자체를 원천봉쇄"

    서울 성수동의 식료품점 겸 레스토랑 '더피커(The Picker)'에 들어서면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사과, 바나나, 양파, 토마토 같은 과일·채소가 비닐랩이나 스티로폼 용기 포장 없이 수확한 모습 그대로 바구니에 담겨 있다. 현미, 퀴노아, 서리태 등의 곡물은 투명한 원통 모양 디스펜서(버튼을 돌리면 원하는 분량만큼 나오는 기계)에 수북이 들어 있다.

    구매한 식료품을 담아갈 비닐봉지가 없어 손님들은 장바구니를 들고 오거나 매장에서 파는 헝겊 소재 에코백을 사야 한다. 손님이 집에서 용기를 챙겨와 필요한 양을 담은 뒤 그 무게만큼 계산한다. 최소 10g 단위로 구매할 수 있다. 식료품점에서 판매하고 남은 재료는 레스토랑에서 요리로 활용해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한다.

    서울 성수동 ‘더피커’는 과일과 채소를 비닐랩으로 포장하지 않고 바구니에 쌓아둔다. 비닐봉지도 주지 않는다. 손님은 직접 챙겨온 장바구니나 에코백에 담아가야 한다. 포장재 사용을 최소화해 포장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프리사이클’을 표방하는 매장이다.
    서울 성수동 ‘더피커’는 과일과 채소를 비닐랩으로 포장하지 않고 바구니에 쌓아둔다. 비닐봉지도 주지 않는다. 손님은 직접 챙겨온 장바구니나 에코백에 담아가야 한다. 포장재 사용을 최소화해 포장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프리사이클’을 표방하는 매장이다. /고운호 기자
    더피커는 '프리사이클(precycle)'을 표방한 국내 첫 매장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친환경 소비 양식이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생활 폐기물 중 포장 쓰레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중량 기준 32%, 부피 기준 50%나 된다. 프리사이클은 포장재 사용을 최소화해 아예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단순 재활용을 뜻하는 리사이클(recycle), 재활용품에 디자인·기능을 더해 가치를 높이는 업사이클(upcycle)보다 더욱 적극적인 환경 보호 개념이다. 송경호(29) 더피커 공동대표는 "미리 조금 수고함으로써 재활용할 필요 자체를 없애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곡물이나 견과류는 디스펜서에 담겨 있다. 버튼을 돌려 원하는 분량을 담아서 무게 단위로 계산한다(위). 재사용 가능한 스테인리스 빨대(아래 왼쪽)와 대나무 빨대(아래 오른쪽).
    곡물이나 견과류는 디스펜서에 담겨 있다. 버튼을 돌려 원하는 분량을 담아서 무게 단위로 계산한다(위). 재사용 가능한 스테인리스 빨대(아래 왼쪽)와 대나무 빨대(아래 오른쪽).

    프리사이클 매장은 독일에서 처음 생겨났다. 2014년 9월 베를린에 문 연 수퍼마켓 '오리지날 언페어팍트(Original Unverpackt)'는 포장재를 일절 사용하지 않아 개장 때부터 화제가 됐다. 곡물, 과일은 물론 음료, 식용유, 샴푸, 치약까지 모든 제품이 커다란 디스펜서에 담겨 있고 손님들은 필요한 만큼 자신이 가져온 통에 담아간다. 연간 1600만t에 달하는 독일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목표로 개장한 이곳은 소비자 호응이 이어지면서 최근 5호점까지 냈다. 프랑스에도 손님이 소액의 보증금을 내고 구매한 병에 식초, 와인, 맥주 같은 액체류를 담아 파는 '장 부테유(Jean Bouteille)'가 있다. 커다란 매장 안에 들어가 있는 '숍 인 숍' 형태로, 프랑스와 벨기에 친환경 식품 전문점 7곳 안에 입점해 있다. 보증금은 병을 반납하면 돌려받는다. 이탈리아 고급 식료품 체인점 '에페코르타(Effecorta)'는 파스타를 커다란 통에 담아놓고 손님이 들고 온 봉지나 용기에 담아가도록 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프리사이클 매장은 미국에서도 관심을 얻고 있다. 지난해 콜로라도 덴버에 문 연 '제로 마켓(Zero Market)'은 신선식품과 세제, 비누 등을 포장 없이 판매한다.

    프리사이클은 아직 국내에선 낯선 개념이다. 홍지선(31) 더피커 공동대표는 "비닐봉투가 왜 없느냐고 항의하는 손님도 있지만, 자기 나라에서 프리사이클을 실천하던 외국인 등 소문 듣고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늘고 있다"고 했다. 일상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최소화하는 '미니멀리즘 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들, 소량의 식료품만 사기 원하는 1인·2인 가구도 많이 온다. 가격은 대형 마트와 비슷한 수준이다. 포장비가 들진 않지만 마트처럼 대량 구매를 통해 매입가를 낮추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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