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미각에 나물 한입… 향기로운 '봄날의 관능'

  •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

    입력 : 2017.04.12 03:04

    [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60] 나물

    나물 사진
    냉장·냉동 기술이 부족했던 시절엔 묵어 시어진 김치와 짜고 마른 생선으로 겨울을 버텼다. 지친 미각에 봄나물은 '봄 타령의 첫 장단이었고 풋나물 따라 식욕도 싹텄다.'(1938년 3월 9일 자 조선일보) 나물을 사랑한 조선 전기 문인 황준량(黃俊良·1517~1563)은 '봄 산에서 나물 캐니 소 잡는 것보다 낫다'고 노래했다.

    우리 조상들은 봄이면 들과 산에 나가 나물을 캐 먹으며 봄 미각을 채웠다. 하지만 봄에 나물을 캐 먹는 것이 미식이나 낭만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규보(李奎報·1168~1241)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 읊은 대로 '봄나물은 주린 손 위로하는' 구원의 음식이었다. 20세기 초반에는 '기근에 산에도 들에도 나물 캐는 사람뿐'(1923년 3월 21일 자 조선일보)이었다. 나물 뜯다가 익사하거나 총에 맞거나 뱀·호랑이에게 물리기도 했다. 독초를 잘못 먹어 죽는 사람도 있었다.

    나물은 신라의 물건이라는 뜻의 '라물(羅物)'이나 '생것(物)'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하나 근거는 없다. 나물이란 단어는 조선시대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1527년)에 '채(菜) 는 먹을 수 있는 풀이다'라는 설명과 함께 처음 등장한다. 명물기략(名物紀略·1870년)에는 '채소(菜蔬)는 먹을 수 있는 풀(草之可食者)의 속언(俗言)으로 나물(羅物)이다'라고 나온다.

    숭불사상에 따라 육식을 금기시한 고려시대에 나물 먹기는 본격화됐다. 기근이 계속된 조선 후기엔 나물이 구황식품 415종 중 322종을 차지했다. 봄에 나는 연한 잎은 맛 좋은 미식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 미식가로 유명한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경기도 광주 천진암(天眞菴)에 사흘간 머물며 냉이·고사리·두릅 등 산나물 56종을 먹고 즐겼다.

    나물은 주로 데쳐서 들기름·참기름·된장에 무쳐 먹었지만, 김창협(金昌協·1651~1708)이 농암집(農巖集)에서 노래하듯 '흰 밥에 향기로운 나물국을 끓여' 먹으며 봄날의 관능을 만끽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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