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디즈니 다니던 30대, 스웨덴 돌아와 AI로봇 개발

    입력 : 2017.04.11 03:03 | 수정 : 2017.04.11 07:57

    [달라지는 복지천국 북유럽… 정경화 특파원 리포트]
    [3·끝] 스타트업을 복지 동력으로

    노키아 등 대기업 몰락 이후 북유럽 국가들, 스타트업 키워
    인공지능 등 4차산업혁명 대비… 핀란드, 지원금 10년 새 30배로
    "망해도 안 죽는다" 자신감 갖게 젊은이들에게 도전 안전판 제공

    정경화 특파원
    정경화 특파원

    "사자보다 얼룩말이 더 빠르다고 생각해. 퍼햇, 너도 동의하니?"

    "아니, 사자가 빨라. 사자는 시속 80㎞로 달리고, 얼룩말은 시속 60㎞라고."

    지난 22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공과대학 캠퍼스에 자리 잡은 스타트업 '퍼햇 로보틱스(Furhat Robotics)' 사무실. 털모자를 쓴 로봇 퍼햇에게 질문을 던지자, 퍼햇은 사자와 얼룩말이 달리는 속도를 스스로 검색한 후 이렇게 맞받아쳤다.

    퍼햇은 인간처럼 말과 표정, 눈빛으로 의사소통하는 인공지능(AI) 로봇이다. 미국 디즈니사에 다니던 사메르 알 모바예드(34)씨는 2014년 스웨덴으로 돌아와 이 회사를 차렸다. 그는 스웨덴 정부에서 투자받은 20만유로(약 2억4000만원)를 종잣돈 삼아 인공지능 로봇 개발에 나섰고, 2년 반 만에 퍼햇을 인텔·혼다 등 글로벌 기업에 납품할 정도로 성장했다. 사메르씨는 "하이테크 스타트업 네트워크가 잘 갖춰진 스톡홀름은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기에 최적의 도시"라고 했다.

    스웨덴과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창업 환경이 좋은 나라로 손꼽힌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등을 개발하고 응용하는 4차 산업 분야 스타트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공과대 캠퍼스에 자리 잡은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인 ‘퍼햇 로보틱스’ 사무실에서 사메르 알 모바예드 대표가 인공지능 로봇인 퍼햇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는 스웨덴 정부의 지원으로 창업 2년 반 만에 퍼햇을 세계시장에 내놓을 정도로 회사를 키웠다.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공과대 캠퍼스에 자리 잡은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인 ‘퍼햇 로보틱스’ 사무실에서 사메르 알 모바예드 대표가 인공지능 로봇인 퍼햇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는 스웨덴 정부의 지원으로 창업 2년 반 만에 퍼햇을 세계시장에 내놓을 정도로 회사를 키웠다. /정경화 특파원
    북유럽 각국이 스타트업 육성을 본격화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이다. 인구 규모가 500만~1000만명 안팎인 북유럽 국가들은 그동안 성공적인 대기업이나 산업 하나만으로 높은 복지 수준을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세계경제 침체와 국제 유가 하락 등 악재가 겹치면서 수출 중심의 북유럽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국내총생산(GDP)의 20%를 노키아 한 곳에 의지했던 핀란드는 2011년 노키아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전체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했다.

    당시 북유럽 각국 정부는 무너진 산업을 회생시키는 데 정부 자금을 쏟아붓는 대신,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했다. 스웨덴은 4차산업 발전을 핵심 성장 전략으로 삼고 창업·혁신 프로젝트에 매년 3000만유로(약 363억원)를 투자했다. 핀란드도 기술 기반 스타트업 지원 예산을 10년 전 400만유로(약 50억원)에서 2015년 1억4000만유로(약 1740억원)로 대폭 늘렸다. 바이킹족이 낯선 바다를 향해 모험에 나선 것처럼 스타트업을 앞세워 4차 산업 혁명의 바다로 뛰어든 것이다. 조셉 마이클 스웨덴 인베스트스톡홀름 사업발전국장은 "작은 나라가 세계시장을 공략하려면 뛰어난 기술과 아이디어를 갖춘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게 지름길"이라고 했다.

    북유럽의 스타트업 환경 지표 정리 표

    이런 투자는 최근 들어 결실을 보고 있다.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스포티파이', 모바일 게임 회사 '수퍼셀' 등 IT를 기반으로 한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이 북유럽에서 탄생했다.

    스톡홀름은 최근 '유니콘 팩토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스포티파이·스카이프 등 유니콘을 잇따라 배출하면서다. 지난해 스웨덴 경제활동인구 중 창업 42개월 이하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인구 비중은 7.2%로 유럽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고용자 중 38%(2015년 기준)가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할 정도로 고급 기술 인력 풀이 넓다.

    핀란드 역시 ICT 분야 스타트업 500여 곳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2008년 시작된 스타트업 콘퍼런스 '슬러시'는 매년 2만명 넘는 전 세계 창업가와 투자자들을 끌어모으는 유럽 최대의 스타트업 축제로 성장했다. 덴마크에서는 지난해 안구 추적 기술을 확보한 신생 기업 '디아이트리브'가 페이스북에 팔리면서 주목을 받았는데, 이 기업도 코펜하겐 IT 대학 학생 4명이 설립한 스타트업이었다.

    젊은이들이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실업급여 등 사회안전망도 북유럽 스타트업의 강점이다. 마이클 국장은 "기술 스타트업은 90% 이상이 초기에 실패한다고 봐야 한다"며 "망하더라도 길거리에 나앉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젊은이들의 모험 정신을 북돋워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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