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안철수만 보고 있으면 안 보이는 것

    입력 : 2017.04.07 03:17

    "마치 좌파 성향처럼 안철수는 분류됐다
    우파 인사와 논객들의 표적이 됐다
    그런 이들조차 그에게로 다가가고 있는 중…"

    최보식 선임기자
    최보식 선임기자

    문재인이 혹독한 비판과 검증을 받아온 것은 단 한 가지 이유다. 그가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하기 때문이다. 이제 안철수도 그런 자격을 누릴 시간이 왔다. "안철수의 시간이 오니 문재인의 시간이 가고 있다"고 스스로 말한 그대로다.

    방황하던 '보수표'가 반기문·황교안·안희정을 떠돌다가 그의 어깨에 일부 내려앉았지만, 마음이 바빠 그에게 꼭 물어봐야 할 것을 못 물어봤다. 여기서 그걸 짚어볼까 한다. 그가 먼저 분명하게 밝혔으면 더 좋았을 '정체성' 문제다. 사드 배치 논쟁이 막 불붙은 작년 7월의 어느 일요일 밤, 그는 페이스북에 '사드 배치는 국익에 도움 안 돼. 국민투표에 부쳐야'라는 글을 올렸다. 굳이 그렇게 서둘 일이 아니었다. 곁에서 누가 빨리 선수를 치라고 조언했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던 그가 이때는 사드 반대의 선두에 섰다.

    이틀 뒤 그는 의원총회를 열게 해 사드 반대 당론을 채택했다. 의총장에서는 "사드 배치는 대재앙" "역사에 죄를 짓는 일" "망국(亡國)적 선택"이라는 발언이 나왔다. 사드 배치에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하며 실제로 받아들였던 김종인의 더불어민주당을 오히려 압박하기까지 했다. 어느 정당이 강성(强性)이고 중도인지 불분명해지는 상황이었다.

    국민투표까지 해야 한다는 그가 몇 달쯤 지나 사드 배치 찬성으로 돌아섰다. 그는 "반대했을 때는 사드 배치 합의가 이뤄지기 전이었다. 이미 진행된 이상 국가 간 합의를 존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입장을 바꾼 것은 큰 허물이 아니다. 정치를 하면서 말을 안 바꿔본 후보란 거의 없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고집하지 않고 옳다는 방향으로 수정할 줄 아는 유연성은 평가받을 만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와 박지원 대표가 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완전국민경선 보고대회에 앞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에 입당한 이언주 의원을 환영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한 달 반 전 그가 '사드 반대 당론'의 변경을 요구해 의총이 열렸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당론을 바꿀 이유가 없다"며 부결됐다. 사드 배치 문제는 정당과 후보의 외교 안보 정책을 판단하는 핵심 잣대다. 그런데도 당론과 후보 입장이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후보가 당론을 어기고 있고, 당 지도부는 보수표 유인을 위해 모르는 척 묵인하고 있다. 개성공단 문제에서도 그는 '현실적으로 재가동은 당장 어렵다'고 바꿨지만, 지도부는 '즉각 재개해야 한다'는 쪽이다. 보수표가 안철수만 보고 있으면 안 보였던 것들이다.

    어제 관훈 토론에서 그는 "내 생각대로 당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깃발을 들어 국민의당을 창당했으나 이 당을 실제 떠받쳐온 것은 '호남표'였다. 김대중 햇볕정책의 계승자인 권노갑·정동영·천정배가 있고,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대북 불법 송금에 연루됐던 박지원은 당대표다. 이들의 대북관, 김대중·노무현 시절의 햇볕정책, 현대사(역사 교과서) 인식 등에 동의하는지 그에게 물어보지 않았고 그도 지금껏 답한 적이 없다.

    6년 전 그가 정치판을 바꿀 '수퍼스타'로 떠올랐을 때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현재의 보수 집권 세력은 '응징'을 당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 무렵부터 그는 마치 좌파 성향처럼 분류됐다. 우파 인사와 논객들의 표적이 됐다. 하지만 그런 이들조차 안철수에게로 다가가는 중이다. 문재인 당선만은 막아야겠다는 일념에서 그를 대안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에게 보수표의 기대를 투사하고, 그에게서 보고 싶은 '온건·합리·보수' 같은 것을 보려고 한다.

    그가 세월 따라 바뀌었을 수 있다. 과거에 나는 "안철수의 역사와 현실 인식이 나이브하다"고 썼지만, 그는 더 이상 나이브하지 않고, 더 이상 '철수'하지 않고, 권력 의지도 강해졌다고 한다. 작년에 제3당을 만들어낸 총선 성적표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번에는 '소몰이 창법'이라며 연설 스타일도 확 바꿨다. 정치적 감각과 학습 능력이 대단히 뛰어난 게 틀림없다.

    하지만 일국의 지도자가 되려는 이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세상을 읽는 눈이다. 그 깊이와 폭이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국가적 사안에 대해 자기의 주견(主見)과 판단력을 갖게 됐는지도 의문이다. 보고서용 정보를 많이 주워들었다고 자기 생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와 함께 하는 정치인들이나 심지어 그의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참모들에게조차 '그가 대통령이 되면 잘할 것 같은가?'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글쎄요'였다. 그는 '미래'와 '4차 산업혁명 주도'를 내세우고 있지만, 한때 그가 애용했던 '새 정치'를 듣는 느낌이다. 그걸 어떻게 구현할지 지금껏 답을 못 들었던 것처럼. 그가 당선되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될지 아직 가늠되지 않는다.

    이제부터 그는 문재인 공격에 정력을 바칠 게 아니라, 자신에 대해 솔직하고 구체적인 얘기를 더 많이 하는 게 옳다. 그리고 소속 정당과의 정체성 혼동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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