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사교육을 다시 생각한다

지난해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
미래 사회를 예측하는 전문가·학자들은 이런 사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것을 권하고 있다.

    입력 : 2017.04.10 08:27

    교육 선진국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 발 빠르게 교육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은 여전히 책 속 단순 지식을 암기하고 객관식 문제 맞히는 기술을 익히러 선행 학습 학원에 다닌다. 많은 학부모가 '이게 맞는 건지…' 불안해하면서도 내 아이만 뒤처지지 않을까 학원에 보내고 있다.

    유발 하라리 "학교 교육 90%, 30년 뒤엔 쓸모없어"

    '기업 이사회에 인공지능(AI) 이사가 등장한다' '인체에 삽입하는 전화기를 사용한다' '감사 업무의 30%를 인공지능이 담당한다'….

    지난해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올해 중학교 3학년생이 대학을 졸업하는 오는 2025년 이 같은 티핑포인트(사회적 조류가 바뀌는 순간)가 나타날 것으로 예견했다. 이 포럼은 "인공지능이 기존 지식과 직업 체계를 뿌리부터 뒤바꿀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을 세계적 화두로 끌어올렸다.

    예컨대 2020년까지 세계 주요 국가에서 710만명이 인공지능에 밀려 일자리를 잃는 대신 200만명은 새로 생기는 일자리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때문에 인간의 일자리 510만개가 수년 안에 사라지는 셈이다. 앞서 미 노동부도 현 초등학생 가운데 지금 존재하는 직업을 대학 졸업 후 가질 가능성이 40%가 채 안 될 것으로 전망했다. 현 직업의 60% 이상은 10년 안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 특히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기사 더보기

    '선행학습→명문대→좋은 직장' 성공 공식 깨지고 있다

    고등학생때 학원 다닌적 있으면 대학서 사교육 받을 확률 1.8배

    서울 명문대 출신 A(28)씨는 중2 때 엄마 손에 끌려 학원에 첫발을 들인 뒤 고3 졸업 때까지 국·영·수 학원을 꾸준히 다녔다. 방과 후 곧장 학원에 가서 짜인 계획대로 선행 학습을 하고 문제를 풀었다. '학원에 안 다녔으면 명문대에 못 갔을 것'이라고 굳게 믿은 A씨의 사교육은 대학에서도 계속됐다.

    예컨대 '토익 시험을 봐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곧장 토익 학원으로 향하는 식이다. 올해 졸업하기까지 사실상 10년 넘게 습관처럼 사교육을 받은 A씨의 지인은 "어릴 때 받은 사교육 효과를 믿어서인지 A가 스스로 공부하기보다 사교육이나 각종 컨설팅에 의존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사교육을 받으면 자기 주도 학습 능력을 잃어버려 대학생이 돼서도 사교육에 의존하게 된다는 이른바 '사교육 습관설' '사교육 중독설'은 실제 연구로도 속속 증명되고 있다. ▷기사 더보기

    "자녀교육 과외·학원에만 맡기면 미래 없어"

    부모가 통제하기보다 스스로 문제해결할수록 자녀 창의적 성향은 더 높아져

    사교육을 많이 할수록 아이들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국책 연구 기관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해진 답을 찾는 사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새로운 것을 생각하는 능력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무총리 산하 국책 연구 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는 5세 유아, 초등 2학년과 5학년 등 총 270명을 대상으로 그림을 통한 창의성 검사(TCT-DP)와 지능 검사를 실시하고, 학부모를 설문 조사해 이런 연구 결과를 얻었다고 17일 밝혔다.

    /조선DB

    육아정책연구소의 '아동의 창의성 증진을 위한 양육 환경과 뇌 발달 연구'에 따르면 사교육을 1주일에 1회 더 받을수록 창의성 점수가 0.563점씩 감소했다. 연구진은 "조사 대상 270명의 창의성 점수 평균이 16.43점인데, 사교육을 1회 더 받을 때 창의성 점수가 0.563점씩 감소한 것은 사교육 횟수가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어떤 점이 창의성을 북돋아주는지 알아보기 위해 부모의 양육 방식과 가족 관계 등이 아이의 창의적 성향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기사 더보기

    "어릴때 과도한 사교육, 뇌신경 불질러 태우는 셈"

    선행학습 모르는
    美 실리콘밸리

    학교가 적성 찾아주는 실리콘밸리
    지난 1일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마운틴뷰에 있는 발도르프(Waldorf)스쿨 6학년 교실. 학생 20여명이 둥글게 모여 앉아 수업을 듣고 있었다. 교사가 인체의 귀 구조에 대해 칠판에 분필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자 학생들은 연필로 노트에 필기했다.

    교실 어디에도 PC와 스마트폰, 태블릿PC는 물론 TV도 볼 수 없었다. 이 학교 샌디 슈메이더 교사는 "일부러 모든 전자 기기나 IT 관련 수업은 배제한다"며 "토론, 체험 등을 통해 학생 스스로 적성을 찾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미국 마운틴뷰에 있는 칸랩스쿨 학생들이 야외에서‘길거리 미술과 표현의 자유’수업을 듣고 있다. /칸랩스쿨 페이스북

    마운틴뷰는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인 구글 본사가 있는 곳이다. 발도르프스쿨 재학생 부모 중 절반 이상이 구글이나 애플 같은 IT 기업에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오히려 수업에서 의도적으로 IT를 배제하고 학생들에게 체험, 교감, 예술 활동 등을 강조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국·영·수 교과 사교육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사교육이 아니라 공교육이 작동해 학생들의 개성과 잠재력을 찾아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 부근에서 수업 끝난 학생들을 학원으로 실어 나르려는 차량들이 줄을 서 있다. /고운호 기자

    사교육 못벗어나는
    韓 판교밸리

    대치동 학원 보내는 판교밸리
    지난 17일 오후 판교의 A초등학교 정문 앞. 노란색 학원 승합차들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수업 끝난 학생들을 학원으로 나르려는 차량 행렬이었다. 부모들의 '학원 라이딩' 승용차도 꽤 많이 대기하고 있었다. 학교 앞 네거리 상가에는 층별로 '○○○ 어학원' 'XX 수학학원'이라고 적힌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학원 밀집 지역 운중동 편의점에는 빵과 우유로 '혼밥'(혼자 밥 먹는 것) 하는 초등학생들도 있었다.

    판교테크노밸리는 한국 IT 산업의 전초 기지이자 스타트업의 산실이다. 하지만 판교테크노밸리 종사자 자녀들의 방과 후 모습은 '사교육 1번지' 서울 대치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사 더보기

    한국 사교육은 '일어서서 영화보기'… 앞줄 관객 일어서자 모두가 서서 보는 꼴

    독일 교사의 첫마디 "절대 선행학습 말라"

    독일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박성숙씨의 말에 의하면 독일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마다 담임교사가 첫 학부모회의 시간에 하는 첫 마디는 "절대 선행학습을 시키지 말아달라"는 당부였다.

    특히 초등학교 교사들은 선행학습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 아이들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전하는 선행학습으로 인한 폐해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선행학습은 '간접적인 교권 침해'라고 했다. 교사는 선행학습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수업을 준비하는데, 미리 학습해온 학생이 있다면 정상적인 수업 진행에 방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독일 바인하임시에 있는 바인하임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영어 수업을 듣고 있다. 독일에서는 사교육을 통해 선행학습 하는 것은 교권과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받아들인다. 독일의 학교 수업도 모든 학생이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이뤄진다. /박성숙씨 제공

    예를 들어 학생들 생각을 유도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질문을 하려고 했는데 다른 아이들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누군가 첫 질문에 정답을 이야기해버리면 교사는 수업 진행에 방해를 받고 다른 학생들은 사고의 기회를 잃는다는 얘기였다.

    이건 교사의 수업권과 학생의 학습권이 동시에 침해받는 일이라고 했다. 자녀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전에는 인식이 부족했던 부모들도 교사들의 이 같은 적극적인 지도 후에는 선행학습을 함부로 시도하지 못한다. 독일에도 사교육은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선행학습이 아니라, 성적 부진 학생을 위한 복습 위주로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다. ▷기사 더보기

    獨 대학 진학률 40%… 대학졸업장 없어도 취직 걱정 없어

    사교육요?
    사립학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핀란드 헬싱키의 중학교 3학년생 올리버군

    핀란드 헬싱키에 사는 중학교 3학년생 올리버(15)군은 "사교육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되물었다. 만화 그리는 게 취미라 학교에서 방과 후 미술 활동을 한 적은 있지만, 국·영·수 학원에 다녀본 적은 없다. 사실 학원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그런 곳에 다닌다는 친구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모든 곳이 교실… 복도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 핀란드 학생들이 학교 복도 한쪽에서 글쓰기를 하고 있다. /핀란드 교육문화부

    ◇핀란드 사교육 주당 6분, 한국 3.6시간

    핀란드와 한국은 둘 다 OECD 학업성취도평가에서 꾸준히 최상위권에 있는 교육 강국이다. 그러나 사교육에 관한 한 두 나라는 극과 극이다. OECD의 '2012 PISA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사교육 참여 시간 평균은 주당 3.6시간에 이른다.

    OECD 회원국 중 가장 길다. 핀란드의 사교육 시간은 주당 6분으로 가장 짧았다. 사교육이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핀란드 학부모들은 왜 자녀들에게 사교육을 시키지 않을까.

    핀란드 중·고교에도 시험은 있다. 과목별 학기말 시험도 있고, 선발 고사를 보는 고등학교도 있다. 고교 과정을 마치면 '국가 대입자격시험'을 보고 대학별 고사도 따로 치러야 한다. 그런데 시험 형식이 다르다. ▷기사 더보기

    "핀란드 학업 최상위 비결, 우수한 교사·맞춤형 창의성 교육"
    "교사 추천 학생은 내신제한 없이 뽑을 것"

    기업은 '참치'급 인재 원하는데… 사교육은 '잡어'만 키워

    " 사교육이 국가 경제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전혀 없는데, 부모들이 왜 사교육에 매달리는지 안타깝습니다. 사교육을 시킬 시간에 책을 읽히면, 아이가 훨씬 호기심 많고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할 겁니다. "

    삼성전자 부회장을 지낸 윤종용(73)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이사장은 사교육 회의론자다. 사교육은 지식 암기를 위해 주입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재양성론과 사교육 폐해론에 대해 말하고 있는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 /조선DB

    ◇"한국 교육은 잡어급 인력만 배출"

    윤 이사장이 사교육의 효과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는 것은 20년 가까이 삼성전기·삼성전자 사장·부회장으로 대기업을 이끈 경험 때문이다. 그는 기업에 가장 필요한 인재로 '호기심이 많고 도전 정신이 있는 사람'을 꼽았다. 이들은 창의적이고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윤 이사장은 하지만 "현재의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으론 수만명은커녕 수백명도 먹여 살릴 수 없는 인력만 배출될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공교육은 평준화를 강조하다 보니 천재가 나올 수 없는 구조가 됐고, 사교육은 지식의 주입만 강조하지 창의력 향상에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기사 더보기

    '학원 뺑뺑이' 손주 안쓰러워… 사교육 반대하는 할아버지들

    논문 11편중 9편 "선행학습 효과 거의 없다"

    중 1 딸과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주부 김모(42)씨는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자녀들을 수학·과학·영어 학원 등에 보낸다. 김씨는 이것이 "합리적 투자"라고 했다. 사교육에 가계 지출의 최우선을 두는 부모 가운데는 김씨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사교육을 하면 성적이 오른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연구 결과를 보면 '사교육=성적 향상' 등식이 늘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선행학습 위주의 교과 사교육이 효과가 있는지 여부는 학계에서도 주요 관심사다. 한국교육개발원은 200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선행학습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가장 최근 보고서(학교 외부의 선행학습 유발 요인 해소 방안 연구·2015)에서 분석한 선행학습 효과 관련 논문 11편 가운데 9편은 선행학습 효과가 없거나 미미하다고 결론 내렸고, 2편만 성적 향상 효과가 있다고 했다.

    2015년 한국교원대 학술지에 실린 '중학교 수학 학업 성취도 성장에 대한 사교육의 효과' 논문은 사교육 효과가 학생들의 성적 수준에 따라 다르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자는 113개 중학교 5017명을 성적 상위 20%, 중위 40%, 하위 40%로 구분해 분석했다. 이 학생들의 3년간 성적을 분석한 결과, 중위 집단 학생의 경우엔 사교육이 중요 변수가 아니었다. ▷기사 더보기

    사교육 받은 대학생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대학 와서도 무기력"

    우울증 부르는 사교육 스트레스… 정신과 찾는 학생들

    " 의사 선생님, 학원 끊으면 정말로 제 인생도 끝나는 건가요?"

    얼마 전 엄마 손을 잡고 소아청소년정신과를 찾은 초등학교 5학년 예은(가명)이가 의사에게 한 질문이다. 엄마는 예은이가 학교에서 이상행동을 보이자, 놀란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상담해보니 선행(先行) 학습으로 이름난 학원에 입학한 것이 계기였다.

    정동선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는 "사교육 부작용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정신과를 찾는 아이들"이라면서 "아이가 이상하다고 찾아왔는데, 상담해보면 학부모가 학원 중독 등 (정신 질환이) 심각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전국의 미성년자 정신과 진료 환자 수는 16만6867명(2015년 기준)이다. 사교육 스트레스로 나타날 수 있는 가장 흔한 증상이 우울증인데, 이 증상으로 치료를 받은 학생은 2만550명이었다. 서울시에서는 미성년자 우울증 환자의 38%가 학원이 밀집한 5개 구(區)에서 진료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사교육 받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기사 더보기

    "밤엔 학교·학원 쉬게 해주세요"

    대기업 부장도 학원비에 휘청… 노후까지 흔들린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부장 C(51)씨는 2년 전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당시 고3 딸과 중2 아들의 사교육에 "한 달에 500만원쯤 나갔다"고 했다. 서울 대치동 가정치고는 사교육을 많이 시킨 것도 아니었다. C씨는 "입사 20년이 넘은 고참 부장이라 월급이 적지 않았지만 마이너스 가계까지 갔다"며 "노후 준비할 시기에 뭐하는 건가 싶었지만 한번 시작한 사교육을 그만둘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가계 재무설계 전문가인 오종윤 한국재무설계 대표는 "과도한 사교육은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 세대에게도 큰 위협"이라며 "사교육 지출을 대폭 삭감하고 은퇴 대비 저축을 늘리지 않으면 노후 파산 위험에 처하는 집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후 자금까지 투자한 부모는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 비용 회수를 하려고 하지만 '좋은 대학→대기업' 성공 방식도 통하지 않는다고 오 대표는 말했다. 그는 "사교육의 종착역은 결국 대학 학자금 대출의 급증"이라고 말했다. ▷기사 더보기

    꼭 필요할 때 부족한 부분만… 사교육, 똑똑하게 이용하세요
     
    • 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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