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4일(현지 시각)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북한에 대해 충분히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는 짧은 긴급 성명을 직접 발표했다. 북핵 문제에 '이제 행동만 남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6~7일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과 중국에 한꺼번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는 그동안 북한의 도발이 있으면 대변인을 통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다"거나 "미국은 모든 역량을 동원해 북한의 위협에 대처할 것" 등 외교적 용어로 비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미사일 도발 후 2시간여 만에 틸러슨 장관이 직접 나서서 아무런 외교적 수사를 쓰지 않고 "더 이상 말로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북한도 강 대 강으로 맞섰다. 노동신문은 5일 논평에서 "비대한 힘을 믿고 우리와 감히 맞서보겠다고 나선 미국에는 말이 절대 통하지 않는다"며 "미국이 우리를 어째 보겠다고 하면 조금도 주저함 없이 그 본거지까지도 잿가루로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했다. 미국 눈치보지 않고 앞으로도 핵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미 행정부는 이날 격앙된 분위기였다. 백악관은 이날 "매우 위급한 상황이다. 이제 (협상의) 시간이 소진됐다"며 실력행사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백악관의 안보담당 고위 당국자는 이날 미·중 정상회담 사전 브리핑에서 "미국은 4대(대통령)에 걸쳐 최고의 외교관을 통해 (북핵) 해법을 찾았다"며 "이제 시간은 소진됐다(The clock has now run out).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올라 있다"고 했다.
그는 "북한 문제가 미·중관계의 시험대"라며 대중(對中) 압박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에 우선 착수하겠다고 했다. 그는 "북한은 대외 교역의 9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며 "일부에서 이견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중국의 (대북) 경제 압박카드는 줄어들지 않은 게 분명하다"고 했다. 이 당국자는 '중국이 대북 압박 협력을 거부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논의할 문제로 남겨두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전략의 세부사항을 미리 공개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분명한 신호를 보낼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백악관에서 경제인들을 만나 "북한은 정말 인류의 문제"라며 "시진핑 주석과 북한을 포함한 현안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자 파이낸셜 타임스(FT) 인터뷰에서 "무역을 (중국과 협상의) 지렛대로 쓸 것"이라고 했다.
북한에 대한 군사 행동 가능성을 암시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핵무기와 미사일 방어체계 운용을 담당하는 존 하이튼 미 전략사령관은 이날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오늘 밤 무슨 짓을 할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의 매일 밤 북한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며 "군인으로서 내 임무는 대통령에게 군사적 옵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항상 군사 옵션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전략적 관점에서 보자면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중국과 관련되지 않고는 어떤 해법도 찾을 수가 없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초대 국방장관 제의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 존 킨 전 미 합참부의장도 이날 영국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지난 20년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의 외교적 노력은 실패했다"며 "선제 공격만이 테이블 위에 남아 있는 유일한 옵션으로 우리는 매우 급속하게 군사적 옵션 쪽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우리 외교부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에 어떤 결론을 내릴지 지켜본 뒤, 빠른 시일 안에 6자회담 수석대표 등의 레벨에서 한·미 접촉에 나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