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인공지능과 겨루라고?

입력 2017.04.05 03:03

노승영 번역가·격월간 소설잡지 '악스트' 편집위원
노승영 번역가·격월간 소설잡지 '악스트' 편집위원
가슴이 철렁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 이후로 다음 차례는 번역이 아닐까 막연히 예상하긴 했다. 구글은 바둑에서 효과가 입증된 인공신경망 기술을 번역에 적용하여, 단어나 어구가 아니라 문장을 통째로 학습하고 처리하는 방식으로 진화했으며 번역 결과는 꽤 인상적이었다. 그래서일까. 인간과 인공지능이 번역 대결을 벌인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 내가 출전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더불어 인간 번역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비장감이 들었다.

'인간 VS 인공지능의 두 번째 세기의 대결'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내걸고 2월 21일 치러진 번역 대결은 인간 번역가의 승리로 싱겁게 끝났다. 구글 딥마인드가 도전장을 내민 바둑 대결과 달리 통번역 협회와 모 대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주최한 행사였으니 예견된 결과였다. 번역 업체 한 곳은 참가를 거부했고 한 곳은 대결 자체를 몰랐다고 한다.

주최 측은 인간이 인공지능에 승리했다고, 협회와 대학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희희낙락할지도 모르지만, 인공지능 번역 진영이 향후에 전열을 가다듬어 정식으로 도전장을 내면 어떡할 건가. 번역 대결이라는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을 거부할 명분은 스스로 걷어차지 않았던가. 이번 대결에 참가한 인간 번역사 네 명을 지목하여 다시 출전하라고 요구하면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가.

[일사일언] 인공지능과 겨루라고?
이번 대결을 지켜보면서 내게 떠오른 단어는 '조바심'이었다. 번역계에서 인공지능 번역을 실질적 위협으로 여겨 두려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 번역이 인공지능 번역보다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비용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짜를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어쩌면 '세기의 대결'은 꺼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확 타오르는 불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번역 대결이라는 발상 자체가 무리였다. 어느 쪽이 이기든 시장을 독식할 수는 없다. 인간의 것은 인간에게, 기계의 것은 기계에. 인간 번역가는 더욱 인간적으로 번역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진짜 번역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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