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볼 준비 안됐는데… 정신 질환 1만9000명, 6월부터 퇴원 예정

    입력 : 2017.04.01 03:12

    인권 보호 위해 입원요건 강화
    정신건강센터 인력 1인당 환자 80명… 병원 밖 환자 돌볼 사람 턱없이 부족
    돌봄 인력 1400명은 더 있어야

    개정 정신건강복지법 시행(5월 30일)을 두 달 앞둔 가운데 법 시행 후 입원했던 정신 질환자가 넉 달 안에 최대 1만9000여 명 퇴원할 수 있다는 의료계 추산이 나왔다. 개정법은 정신 질환자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켜 생기는 인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입원 요건을 엄격하게 했다. 이 때문에 입원했던 정신 질환자가 대거 사회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31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한국중독정신의학회 등 의료계는 개정법이 시행되면 정신 질환자 1만5000~1만9000명(2015년 입원 환자 수 기준)이 넉 달에 걸쳐 퇴원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입원한 중증 정신 질환자(조현병·조울증·우울증) 4만2210명과 알코올중독자 1만7604명 중에서 개정법에 따라 사회로 나올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추산(연구에 따라 23~32%)한 결과다.

    의료계 추산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실제 퇴원자는 소수에 그칠 것"이라고 하지만, 의사들은 "개정법을 지키면 대거 퇴원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또 "퇴원 정신 질환자를 돌볼 시설과 전문가 등 사회적 준비가 부족해 자칫 예기치 않은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법조계 등에선 "의사들이 '과잉 우려'하는 것이며 인권 측면에서 개정법 시행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정신질환자 입원 기준 어떻게 바뀌나 정리 표

    개정법이 정신 질환자 입원 요건을 강화한 것은 강제 입원 환자의 인권 문제가 종종 불거졌기 때문이다. 작년 9월 헌법재판소는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킬 수 있는 현행 정신보건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단을 내렸다. 2013년 재산을 노린 자녀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당한 박모(61)씨의 인신 보호 청구 사건이 계기였다. 이에 복지부는 지난해 5월 ▲입원 요건을 '입원 치료 필요' '자·타해 위험' 등 둘 중 하나만 충족하는 것에서 둘 다 충족해야 하는 것으로 강화하고 ▲입원시킬 때에도 전문의 '1명 진단'에서 '서로 다른 병원 소속 2명'으로 늘리는 쪽으로 법을 개정했다.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강제로 갇혀 있는 사람에게 정신병원은 감옥과 다를 바 없다"면서 "비자의(非自意) 입원자가 지금도 수만명에 이르는 상황이라 법 개정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했다. 또 우리의 강제 입원 비율은 60%가 넘어 독일(17.7%)·영국(13.5%) 등과 비교해 크게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 복지부 설명이다. 사회 의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 아서 클라인만 미국 하버드대 교수도 얼마 전 본지 인터뷰에서 "정신 질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으면 오히려 문제가 더 커진다"며 "이들을 사회로 돌려보내고 잘 돌보는 편이 장기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고 했다.

    반면 의료계는 법 개정 취지는 공감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가 입원 환자들이 대거 사회로 나갔을 때 돌볼 준비가 덜 돼 있다며 지역사회 관리가 철저한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사회적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기도의 한 병원에 조현병 증세로 입원 중인 김석현(가명·24)씨는 '아버지를 죽여라'는 환청을 듣곤 하는데, 약물치료를 받으며 증세 악화를 막고 있다. 이런 중증 정신 질환자도 자·타해 위험이 명확하지 않으면 개정 법 시행 시 퇴원할 수 있다고 의사들은 설명한다. 더구나 정신 질환자들은 재입원율도 높다. 중증 정신 질환(조현병·조울증·우울증)에선 한 달 내 재입원율이 37.8%, 알코올중독은 50%에 이른다. 따라서 정기적 상담이나 투약 관리 등을 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병원 밖에서도 환자를 돌보고 관리할 정신건강증진센터 등이 꼭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이런 시설이 태부족한 상태라는 지적이다.

    정신건강증진센터에 근무하는 상근 전문 인력(959명)은 한 명당 80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 선진국 수준(한 명당 환자 30명을 돌봄)이 되려면 1400명 정도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는 게 의료계 설명이다. 유제춘 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금도 돌봄 인력 부족으로 간단한 약물치료만 꾸준히 받아도 괜찮을 환자들이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상태"라며 "추가 퇴원 환자가 생기면 이 사각지대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각기 다른 의료기관 소속 정신과 의사 2명이 강제 입원을 판단토록 한 것도 의사 수나 진료 여건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의료계 주장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개정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졸속 심의·통과돼 법 시행 전이라도 재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김현준 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은 "법 시행 전 재·개정은 물리적으로 어렵다"며 "예외 조항을 마련해 법 시행 시 우려점들을 상당 부분 해소했기 때문에 큰 부작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