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외곽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가 30일 오전 '정부 조직 개편안'을 발표하자 관가가 술렁였다. 개편안은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분리,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통합, 미래창조과학부 해체 등이 골자였다. 현 시점에서 집권 가능성이 상당한 문재인·안희정·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의 정책 담당자들까지 토론회에 참석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음 정부의 조직 개편안으로 유력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관가에서 퍼졌다. 실제 일부 인터넷 언론과 통신사들에서 이런 취지의 보도도 이어졌다. 민주당 지도부와 각 후보 진영이 "연구소 발표 내용은 우리 입장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파문은 상당 부분 잦아들었지만, 부처의 생사를 묻는 공무원들의 문의가 민주당과 각 후보 캠프에 쏟아졌다.
더미래연구소는 민주당의 개혁 성향 초·재선 의원들이 만든 것으로 당의 공식 기구는 아니지만 그동안 민주당 정책에 영향을 미쳐왔다. 이들이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연 '2017년 이후 대한민국 대선 핵심 어젠다' 토론회에는 문재인 후보 측 홍종학 정책본부장, 안희정 후보 측 정책 담당 조승래 의원, 이 후보 측 조원희 국민대 교수가 참석했다. 또 연구소 소장인 김기식 전 의원, 원혜영·김현미·윤관석·이학영·유은혜 의원 등 당내 의원 10여명과 공무원 등 80여명이 참석했다.
[차기 정부조직개편 논의, 기획재정부 분리안 공감대 확산되나]
연구소가 지난해 11월부터 10차례에 걸쳐 토론회를 열어 부처별 토론을 한 뒤 만든 안(案)에는 기재부 개편안으로 두 가지 방안이 제시됐다. 기재부를 국가재정부(예산·조세·국고)와 금융부로 나누거나, 경제부총리를 폐지하고 기획예산처(예산·경제기획)와 재정금융부(세제·금융)로 분리하자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기획예산처·재정경제부 체제가 부활하는 셈이다. 박근혜 정부 때 만들어진 미래창조과학부 해체,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통합, 문화체육관광부를 문화관광부로 축소하고 국민안전처를 국민안전부로 승격하는 안도 나왔다. 토론회에서 원혜영 의원은 "오랫동안 준비해온 안을 발표하는 자리에 우리 당의 유력 후보 측이 참석했다"며 "이번 선거 때 우리 당이 제시하는 공약은 내용과 격이 다를 것"이라고 했다. 다만 각 후보 진영의 반응은 신중했다. 문 후보 측 홍종학 정책본부장은 토론회에서 "문 후보가 유일하게 공약한 것은 중소벤처기업부 신설이다. 그 외 정부 조직 개편은 최소화한다는 원칙"이라고 했다.
토론회가 끝나자 각 부처에서 국회를 담당하는 직원들로부터 '부처 개편안이 확정된 것이냐'는 질문이 당과 각 후보 캠프에 쇄도했고 민주당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윤호중 정책위의장은 본지 통화에서 "민간 연구소의 의견에 불과하다. 당론과는 관계가 없다"고 했고,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많은 부처에 손을 대기보다 꼭 필요한 부분만 개편하고 나머지는 공직 사회와 협의해서 단계적으로 개편하겠다는 것이 당의 입장"이라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민주당 각 후보 진영은 "현실적으로 대선 전에 추진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은 "경제·안보 현안이 많아 집권 직후 개편이 어렵고 향후 개헌까지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고 했다. 문 후보 측 대변인 김경수 의원은 "조직 개편안을 발표한 것은 연구소의 개별적 활동이다. 문 후보의 정책 방향과는 다르다"고 했다. 안희정·이재명 후보 측도 "차기 정부 조직의 개편안에 대해 논의를 하기 위해 참석했을 뿐 개편안에 100%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각 후보 측이 이처럼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은 사안이 갖고 있는 폭발성 때문이다. 문 후보 측 관계자는 "예비 내각 명단 같은 확인되지 않은 인사(人事)나 정부 조직 개편안이 캠프 입장처럼 보도될 경우 거기서 이익을 보는 1명의 친구가 생길지 몰라도 거기에서 배제되거나 불이익을 받은 99명은 적이 된다"고 말했다.
다른 정당 후보 측도 정부 조직 개편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측은 "이미 국정 공백이 길었는데 성급한 개편으로 다시 공무원 사회를 흔들 수 없다"고 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측은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해 무리하게 뜯어고치는 개편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현실적으로도 정부조직법은 그동안 여야(與野) 합의를 통해 개정해왔기 때문에 민주당이 단독으로 정부 조직 개편을 추진할 수 없다. 더구나 어느 당이 집권해도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이다. 그럼에도 민주당 외곽 연구소의 개편안 하나에 각 부처가 술렁인 것은 조기 대선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다. 인수위에서 보통 다음 정부의 조직 개편 논의가 이뤄지는데 이번에는 이 과정이 없다. 문 후보 측 관계자는 "일단 현재의 정부 조직으로 다음 정부를 출범시킨 다음에 정부 조직 개편 문제를 논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