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관광객 부른다면서… 명동 할랄식당 '0'

    입력 : 2017.03.29 03:03

    [무슬림은 관광하기 불편한 한국]

    구경하다말고 식사하러 이태원行… 메뉴·안내판 등 온통 중국어 천지
    무슬림 위한 기도실 서울에 3곳뿐 "日은 호텔천장에 메카방향 표시"

    지난 19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명동 거리. 태국에서 온 관광객 라디야(26)씨가 노점 옆에 쭈그려 앉아 터키 전통음식인 케밥을 먹고 있었다. 라디야씨 옆에는 구입한 화장품 쇼핑백들이 놓여 있었다. 무슬림(이슬람교도)인 라디야씨는 명동 관광 중에 점심을 먹으려고 했지만 이슬람교도가 먹을 수 있는 '할랄' 음식점을 찾지 못해 아침 식사 이후로 쫄쫄 굶었다고 했다. 동남아인이 운영하는 노점을 발견하자마자 케밥으로 식사를 때운 것이다. 라디야씨는 "드라마 '겨울연가'에 반해 2년 전 한국 여행을 오고 이번이 두 번째인데 무슬림이 관광하기 불편한 나라라는 점은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무슬림인 샤즈니(32·말레이시아)씨 등 일행 넷도 지난 22일 낮 명동에서 할랄 표지가 붙은 식당을 찾지 못해 낭패를 봤다. 한 한식당에 들어가 메뉴판에 있는 비빔밥 사진을 가리키며 영어로 "돼지고기나 돼지기름이 들어간 것이냐"고 물었지만 식당 주인은 연신 "딜리셔스(delicious)"만을 외쳤다. 식사를 포기하고 나온 샤즈니씨는 "가게 입간판과 메뉴판 모두 한국어 아니면 중국어였다"며 "한국인데 왜 중국어 투성이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먹을 게 없어요” - 지난 22일 동남아의 무슬림 관광객들이 서울 명동 거리를 거닐고 있다. 서울에서 이슬람 율법에 따라 ‘할랄’ 인증을 받은 음식점은 이태원 등지의 8곳뿐이다. 일반 음식점도 메뉴가 중국어 안내 위주이고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무슬림 관광객들이 마땅한 먹을거리를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먹을 게 없어요” - 지난 22일 동남아의 무슬림 관광객들이 서울 명동 거리를 거닐고 있다. 서울에서 이슬람 율법에 따라 ‘할랄’ 인증을 받은 음식점은 이태원 등지의 8곳뿐이다. 일반 음식점도 메뉴가 중국어 안내 위주이고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무슬림 관광객들이 마땅한 먹을거리를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박상훈 기자

    명동은 무슬림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한국의 대표 관광지다. 한국관광공사가 작년 한국을 방문한 무슬림 관광객 700명을 조사한 결과, 명동을 방문했다고 답한 비율이 전체의 76%로 1위였다. 이어 동대문시장(64%), 남산타워(63.3%), 이태원(62.4%), 고궁(61.7%) 등의 순이었다.

    그러나 명동에는 '할랄' 인증을 받은 식당이 한 곳도 없다. 여행업계에서는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금한령(禁韓令) 여파로 정부와 지자체들이 앞다퉈 동남아 관광객 잡기에 나서고 있지만 대다수가 무슬림인 이들을 맞을 준비는 전혀 안 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명동에서 만난 한 여행 가이드는 "한때 '큰손'이었던 중국인에게만 '올인'했던 관광 인프라가 이제는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관광객이 급감한 뒤 서울 명동과 강남대로 같은 주요 관광지에서는 동남아 관광객이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무슬림들이 겪는 한국의 관광 현실은 열악하기만 하다. 22일 말레이시아 단체 관광객을 인솔하던 가이드 김은경(45)씨는 "동남아 관광객들은 명동에서 관광하다가도 식사 때가 되면 매번 '할랄 식당'이 있는 이태원으로 돌아가 밥을 먹어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할랄 인증 기관인 KMF는 식재료 선정부터 조리 과정까지 할랄 규정을 지키는 식당에 한해 '할랄 인증'을 해주고 있는데 서울에는 이태원에 7곳, 강남에 1곳뿐이다. 인천과 남이섬에도 각 한 곳밖에 없다. 가이드 김씨는 "인증을 받는 비용(90만원)이 부담스럽다면 식당에 '식물성' 표시라든가 '할랄 프렌들리(friendly)'라고 최소한의 표시라도 해두면 좋을 텐데 이마저도 없다"며 "워낙 먹을 게 없어 과일만 먹는 무슬림 관광객도 많다"고 말했다.

    무슬림 관광객은 화장품 등 물건을 살 때도 애를 먹는다. 한 무슬림 관광객은 "식물성 성분만 쓰인 화장품을 써야 해서 영어로 점원에게 성분을 문의했더니 자기는 '중국어 통역 전담 직원'이라며 손을 내젓더라"고 했다.

    무슬림은 하루 5번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태어난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해 기도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 관광지에 무슬림을 위한 기도실은 코엑스·롯데월드·한국관광공사 건물 단 3곳에만 설치돼 있다. 여행 가이드 김복실(50)씨는 "일본의 경우 호텔 천장에 메카 방향이 표시돼 있는 곳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그런 배려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할랄

    ‘신이 허용한 것’이라는 뜻으로, 이슬람 율법에 따라 처리돼 무슬림들이 먹을 수 있는 식품을 말한다. 곡물·야채·과일 등 모든 식물성 음식과 생선·조개 같은 해산물이 포함된다. 소·양·닭 등 육류는 알라에게 기도한 뒤 단칼에 도축해야 한다. 돼지고기와 알코올은 금지되며, 식품 제조 과정에 혼입되지 않는다는 것이 검증돼야만 할랄 인증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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