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Get Frank(솔직해지자)'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네덜란드 인기 래퍼 '케빈 블랙스타(Kevin Blaxtar)'가 등장한다. 그의 입에선 '2008년부터 물 소비량을 26% 줄였다' '아프리카 농부 12만명의 작물 생산을 지원했다'는 슬로랩이 흘러나온다.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어. 네가 직접 찾아서 읽어봐. 공짜야." 래퍼의 나지막한 읊조림과 함께 클로즈업된 화면, 초록색 책자 표지와 함께 인터넷 주소(www.theheinekencompany.com/sustainability)가 나타난다. 유튜브에 올라온 세계적인 맥주회사 '하이네켄(Heineken)'의 2015년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이하 지속가능보고서) 홍보 영상이다.
지난해 하이네켄이 만든 이 영상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보고서 다운로드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 힙합 마니아들은 랩 소재를 위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탐독했고, 소비자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6%까지 줄이는 등 책임경영을 지속해온 국민 맥주 하이네켄을 응원했다. 고객의 눈높이에서, 고객을 위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정보를 고심하고 소통한 덕분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지속가능보고서가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자사의 책임경영 현황에 관심을 갖도록, 영상·블로그·잡지 등 다양한 형태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짜고 있는 것. CSR 정보를 숨기기에 급급한 국내 기업들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이젠 지속가능보고서도 양보다 질"이라며 "무엇(What)을 말하기보다, 어떻게(How) 소통할지 고민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CSR 평가연구기관인 IGI(Inno Global Institute)와 함께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 포브스가 선정한 CSR 우수 기업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심층 분석했다.
◇영상은 기본, 스토리텔링형 블로그 붐
'회사의 총 폐수 배출량은 얼마인가요? 1922만8923t의 폐수를 배출합니다.' '노동조합에 가입된 인력의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36%입니다.' '정규직 사원 연수에 사용되는 평균 금액은 얼마인가요? 600달러입니다.'
수프 제품으로 유명한 캠벨(Campbells) 홈페이지 '질의응답' 코너에 정리된 내용이다. 지속가능보고서에 담긴 딱딱한 정보를 'Q&A' 형태로 풀어서, 고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는 것. 인권·안전·직원 교육·지배구조·동물 복지·포장·보험 등 Q&A 세부 항목만 25개, 항목별 문답도 최대 10개에 달한다. 문장이 간결하고, 수치를 활용해 명쾌하게 답변했다. 지속가능보고서를 별도로 다운받지 않아도 궁금증이 쉽게 해소된다.
지속가능경영 정보를 담아 블로그를 운영하는 기업도 많다. 코카콜라는 현장 사진과 유튜브 영상을 활용해 CSR 활동을 실시간 업데이트하고 있다. 기획형 콘텐츠는 물론, '인기글'·'인기 영상'·'SNS 공유 순위 톱10' 코너를 마련해 흡사 온라인 뉴스 채널을 연상시킨다. 코카콜라 브랜드를 활용한 재미난 콘텐츠가 많다 보니 소비자의 열독률도 높다. 개별 콘텐츠의 유튜브 최대 조회 수는 1000만, 트위터 팔로어는 110만에 달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린(환경)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사내 지속가능파트 디렉터 3명이 작가로 활동하며 환경 관련 콘텐츠를 매월 2건 이상 올리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환경 관련 정책과 현황은 물론 'CSR의 미래', '지속 가능한 데이터 혁명' 등 전문적인 내용도 많다.
◇대외비는 없다?…CSR 보고서 웹사이트 별도 운영
지속가능보고서 웹사이트를 별도로 운영하면서, CSR 데이터를 고객들이 직접 활용할 수 있게 한 글로벌 기업도 늘고 있다. 유니레버는 공식 홈페이지에 '쌍방향 소통 차트(Interactive data charts)' 코너를 마련했다. 지난 20년간 환경·건강 및 안전·경제적 효과·지역사회 등에 미친 영향력을 분석한 빅데이터를 공개, 대중이 CSR 데이터를 자유롭게 다운받고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예를 들어 '물 사용량'을 클릭하면 20년치 그래프가 나타나고, PDF·JPG·엑셀 등 문서 종류를 선택해 다운로드할 수 있다. 그래프 상단의 버튼을 누르면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Google+)·링크드인(Linked in)에 바로 공유할 수 있다. CSR 정보를 공개할 뿐만 아니라, 이를 더 많은 사람에게 확산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한 것이다.
GM의 지속가능경영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파란색 지도가 나타난다. 도로 위에 그려진 동그란 모양의 아이콘을 클릭하면, 팝업창이 뜬다. '다음 세대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위한 교육 및 지원', '자동화 서비스를 통한 공유차(car)', '평생 고객 관리' 등 GM의 5개 테마별 CSR 성과(임팩트)가 사진·인포그래픽과 함께 설명돼 있다. 최근 6년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와 2020년 목표를 그래프로 나타내 가독성을 높였다. 임팩트를 '과정(Process)·우선순위(Priorities)·도전 과제(Challenges)'로 나눠, '협력업체의 다양한 위험 요소를 관리하고, 공급망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고객의 사이버 보안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등 보완할 점까지 솔직하게 공개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IBM 역시 지속가능보고서 웹사이트를 따로 개설해, 교육·건강·도시 문제 해결 등 사례별 진행 과정을 동영상으로 구현했다.
◇이해관계자 참여 코너, 소비자 신뢰 높인다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농장·직물공장·생산공장 등 전 세계 협력업체의 정보를 홈페이지에 맵핑했다. 세계지도에 표시된 색깔별 아이콘을 클릭하면, 각 공장의 주소·직원 수·성비·생산 제품·거래 현황 등 세부 정보가 사진과 함께 나타난다. 협력업체별로 '에너지 효율성을 매년 3%씩 줄이고 있다' 등 파타고니아팀과 함께 진행하는 지속가능경영 현황 및 성과를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공급망 지도'는 투명성과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새로운 모델로 꼽히고 있다.
글로벌 석유업체인 셸(Shell)은 2025년, 2050년까지의 에너지 시나리오를 각각 예측한 '미래보고서'를 발간했다. 관련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 전략을 세울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한 것. 참여형 코너도 만들었다. 고객으로부터 에너지 산업에 대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홈페이지에서 직접 접수한다. 아이디어가 선정되면 제안자는 실험실, 연구실, 전문 코칭, 자금 등을 지원받는다.
이윤석 InnoCSR 대표는 "CSR과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지속가능경영의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