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 공약 1호 법안으로 '오바마케어(전국민건강보험)'를 대체하기 위한 '트럼프케어(미국건강보험법)'가 좌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 시각) 트럼프케어에 대한 하원 표결을 30분 앞두고 이를 전격 철회했다. 공화당 내 강경보수파가 "트럼프케어는 오바마케어를 수정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 법안에 대한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으면서 법안 통과에 필요한 과반 지지표(216표)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무슬림 입국을 막기 위한 '반(反)이민' 행정명령이 법원에 막힌 데 이어, 1호 법안인 트럼프케어마저 여당(공화당) 내 반대로 무산됨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두 달 만에 국정 동력이 크게 떨어지게 됐다. 공화당은 다수당으로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있다.
CNN 등 미 언론에 따르면 폴 라이언 하원의장(공화당)은 이날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에게 과반 지지 확보에 실패했다고 보고하고, 법안의 자진 철회를 건의했다. 전날까지 "무조건 표결"을 주장했던 트럼프 대통령도 체념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라이언 의장은 "현 상황에선 표결을 강행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했다.
전국민의료보험이라 불리는 '오바마케어'의 폐지는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공화당의 대선 1호 공약이었다. '오바마케어'는 의료보험 대상 확대라는 취지는 좋았지만, 보험료가 급격하게 올라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한 공화당 지지층의 거센 반발을 샀다. CBS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껏 트위터를 통해 70여 차례나 '오바마케어' 폐기를 주장했다"고 전했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것은 약 30명인 공화당 강경파 '프리덤 코커스'였다. 이들은 '오바마케어'의 완전 폐지를 요구하며, 개선안인 '트럼프케어'를 거부했다. '트럼프케어'도 건강보험 보조금을 너무 많이 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찬성) 투표하지 않으면 '오바마케어'를 그냥 둘 것"이라며 벼랑 끝 전술을 폈다. 하지만 이들은 "통치하지 못하면 파괴한다(rule or ruin)"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강경파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했다.
반대로, 공화당 내 온건 보수파 의원 20여 명은 건강보험 미가입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이유로 트럼프케어에 반대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도 트럼프케어에 반대하면서 콜로라도주로 스키 휴가를 떠나는 등 정권 내부도 분열 양상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갑자기 자신이 그동안 '가짜 뉴스'라고 공격해온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 백악관 출입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법안 철회 사실을 공개했다. WP의 로버트 코스타 기자는 "발신자 표시가 없는 휴대전화가 울려 받았더니 트럼프 대통령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법안을 철회했다'고 알려줬다"고 했다. NYT의 매기 해버먼 기자도 "(법안 불발은) 민주당의 잘못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로 말했다"고 했다. 25일에는 트위터에 "'오바마케어'는 곧 (비용 부담 증가로) 폭발할 것이고, 우리는 모두 '국민을 위한 위대한 건강보험법'을 중심으로 연대할 것"이라며 "걱정하지 마라"고 적기도 했다.
트럼프케어 통과가 불발로 끝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나머지 핵심 공약들도 의회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케어' 철회 직후 "이제 세제 개혁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백악관은 수입품에는 관세를 물리고 수출 기업에는 면세 혜택을 주는 이른바 '국경세'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세제 개혁안을 만들어 놓고 발표 시점을 조율하고 있다. 그러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 공화당 상원에서만 7명 이상이 공개적으로 세제 개혁에 반대하고 있다. 미 상원은 공화당(52석) 내에서 2명만 반대해도 법안 통과가 불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