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선 주자들의 공약을 보면 이러다 일자리가 남아돌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정도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 1월 "공공 일자리 81만 개 포함해 131만 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선언하자 적게는 90만 개(이재명 성남시장)에서 300만 개(자유한국당 안상수 의원)까지 장밋빛 공약이 줄을 잇고 있다. 전국의 청년 실업자들은 솔깃할 것이다. 이 약속은 지켜질까?
멀리 갈 것 없이 직전 대통령 세 명의 일자리 약속을 보자.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은 연평균 7% 경제성장으로 일자리 250만 개와 300만 개를 각각 만들겠다고 호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임기 중 150만 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노라며 표를 끌어갔다. 그 결과는 어떤가?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9.8%, 실업자는 100만 명을 넘으며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비정규직 등 질 낮은 일자리를 전전하는 청년을 포함한 체감 청년 실업률은 30%를 웃돈다는 분석도 있다. 세 전직 대통령 중 어느 한 명이라도 자신의 공약을 절반만 지켰더라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현재로선 대선 주자들의 일자리 공약이 전직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공약을 이행할 설득력 있는 수단이 보이지 않는 데다 공약을 지키는 데 따를 부작용도 크게 고민하는 것 같지 않아서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 전 대표는 지난 22일 한국노총 대표자회의에 참석해 "정부와 공공 부문이 최대 고용주다. 이제 '작은 정부가 좋다'는 미신을 끝내야 한다"며 81만 개 공공 일자리를 거듭 약속했다. 하지만 여기에 얼마나 많은 세금이 들지, 한번 비대해진 공공 부문을 계속 유지하는 데 따른 부작용 등 지난 두 달 동안 줄기차게 제기된 비판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 기업과 하청 기업 등으로 갈라진 노동 시장 양극화 문제는 이미 발등의 불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문 전 대표는 한국노총을 방문하기 나흘 전인 지난 18일엔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을 찾아가 교사를 비롯한 공무원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겠다고 했다. 공무원과 대기업과 공기업 등 이른바 상위 10% 정규직 노동자로 구성된 거대 노조를 찾아가 공무원 정치 참여, 공공 부문 일자리 확대 등 잇따라 '추파'를 던진 셈이다.
이래서야 노동 시장 양극화 등 우리 사회가 수년간 논의해온 노동 개혁은 꿈도 꿀 수 없다. 입에 쓴 약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천국'이라 불리는 유럽 각국에서 잇따르는 노동 개혁이 그랬다. 2002년 독일 슈뢰더 총리의 '하르츠 개혁'을 필두로 스페인과 이탈리아·영국 등이 기득권 노동자의 양보를 요구하는 노동 개혁 흐름에 동참했다. 프랑스는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35시간에서 39시간(최대 60시간)으로 늘린 노동법 개혁안을 지난해 5월 마뉘엘 발스 총리가 헌법 예외 조항을 활용해 직권으로 국회 표결 없이 통과시켰다.
당락에 목매는 정치인의 선거철 감언(甘言)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사람들의 말은 달라야 한다. 입에 쓴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