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명태 아빠, 가출한 명태 데려오다

조선일보
  • 전현석 기자
    입력 2017.03.25 03:02

    [전현석 기자의 觸(촉)] 씨 말랐던 국산 명태… 완전양식 기술 개발한 변순규 박사
    "현상금 걸고 어미 명태 수소문… 아기 키우듯 수만마리 키워"

    명태가 돌아왔다. 아니, 명태 아버지가 집 나간 명태를 데리고 왔다.

    작년 9월 해양수산부 동해수산연구소는 우리 바다에서 씨가 마르다시피 했던 명태의 완전양식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세계 최초로 이 일을 해낸 사람은 '명태 아버지' 변순규(54) 박사다. 자나깨나 명태 생각뿐이라 해서 동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의 명태 양식 기술은 작년 우리나라 10대 과학기술 뉴스에 선정됐고, 그는 지난 7일 정부가 매년 최고 공무원에게 주는 옥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러시아·일본산 명태가 주종이던 우리 식탁에 2020년이면 국산 생태찌개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연구소는 밝혔다.

    지난 21일 강원 강릉 동해수산연구소에서 만난 변 박사는 "명태 한 마리를 수조에서 잠시 꺼내 사진 찍자"는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동료 박사들이 "몇 분 정도는 괜찮다"고 하는데도 "이 귀한 물고기를 어떻게 수조에서 꺼내느냐"고 했다. 간신히 한 마리를 꺼내 30~40초쯤 셔터를 누르자 그는 "이제 그만" 하더니 명태를 물속에 집어넣었다. 이 연구소에는 다 큰 명태(길이 약 45㎝) 500여 마리와 치어 5만여 마리가 자라고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
    세계 최초로 명태 완전양식 기술 개발에 성공한 변순규(54) 박사는 명태를 아기 다루듯 했다. 명태를 수조 밖으로 꺼내 사진 한 장 찍는데 “귀한 물고기 다칠 수 있다”며 1시간 동안 망설였다. 명태 한 마리를 양동이에 담아 동해수산연구소 옥상에 옮긴 뒤 30여초 만에 사진을 찍었다. 그는 두 손 들어 명태를 잠깐 보여주더니 다시 양동이 속에 넣고 수조로 달려갔다. 명태 연구를 시작한 뒤로는 명태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 장련성 객원기자

    "노가리 남획으로 명태 사라져"

    ―명태는 왜 집을 나갔던 건가요.

    "명태가 집을 나간 게 아니라 우리가 명태를 너무 함부로 잡아먹었어요. 제 생각에는 노가리를 너무 많이 잡아서 그런 것 같아요. 원래 노가리는 어획을 금지했는데, 1971년부터 정부에서 허락했어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전체 명태 어획량의 70%가 노가리였어요. 기후변화 때문에 동해 수온이 올라가면서 안 잡힌다고 하는데, 제 생각엔 그게 아니에요. 동해 온도가 지난 50년간 1.39도 올랐는데 표층수가 그렇지 심층수는 오히려 더 내려갔거든요." 명태에게 있는 수많은 별명 중 '노가리'는 새끼 명태를 뜻한다.

    ―명태가 한때 '국민 생선'이었는데 이젠 '귀하신 몸'이 됐습니다.

    "명태 이름이 28가지 정도 돼요. 싱싱한 생태, 얼려서 동태, 말려서 북어, 한겨울 얼렸다 녹이길 반복한 황태, 검게 말렸다고 흑태·먹태, 희게 말렸다고 백태, 딱딱하게 마르면 깡태, 코를 꿰어 꾸덕꾸덕 말린 코다리, 그물로 잡았다고 망태, 낚시로 잡으면 조태, 새끼는 노가리 또는 애기태라고 부르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등어, 오징어보다 더 많이 먹는 생선이 명태예요. 한 해 25만t씩 먹어요. 국민 1명당 7~8마리꼴이죠. 명태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하나도 안 버려요. 탕, 젓갈, 찜, 구이, 조림, 포, 김치까지 만들어 먹죠. 많이 먹은 건 많이 잡혀서였어요. 광복 전 전국 수산물 생산량의 28%를 차지했고요. 어촌에선 '동네 개도 명태 물고 다닌다'고 했죠. 그런데 1981년부터 덜 잡히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1년에 1~2t 잡힐까 말까 해요. 현재 국내 명태 소비량의 90% 이상을 러시아와 일본에서 수입해요." 마치 명태 백과사전을 보고 읽는 것처럼 유창한 설명이었다. 자칫 인터뷰 내내 명태학 강의만 듣다 돌아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주말에 오히려 더 바쁘시다고요.

    "명태 돌보는 우리 과 인원이 10명인데, 주말에는 4~5명이 교대로 봅니다. 일은 똑같은데 사람이 없으니까 평일보다 더 바쁘죠."

    변 박사는 이달 초 서울 살던 아내가 연구소 근처로 이사 오기 전까지 혼자 연구소 관사에서 지냈다. 명태 연구 때문에 서울 집에 자주 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동료 연구원들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변 박사는 보통 석 달에 한 번 집에 갔어요. 설날, 추석도 못 챙기고요. 작년 추석에는 여든 넘은 어머니께서 직접 연구소까지 왔어요." 변 박사가 "다른 연구원들도 사정이 비슷하다"며 웃었다.

    ―명태 키우는 게 다른 물고기보다 힘들다던데요.

    "물고기 키우는 게 다 힘들죠, 뭐."

    대답이 짧고 두루뭉술해졌다. 동료 연구원이 귀띔했다. "변 박사 원래 저래요. 무뚝뚝하고 내성적이죠. 물고기하고만 잘 통해요." 혼잣말처럼 "살아있는 명태는 처음 봤어요. 생각보다 예쁘네요" 하자 무표정하던 변 박사 얼굴에 웃음기가 비쳤다. "시장에서 파는 명태는 죽었으니까 색깔도 검고 어둡게 보이죠. 잘 자란 명태 보면 색깔도 약간 황토색이고, 그보다 더 어릴 때는 황금색도 나요. 아주 예쁘죠."

    "명태 1마리 50만원" 현상수배도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가 배포한 ‘동해안에 살아 있는 명태를 찾습니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가 배포한 ‘동해안에 살아 있는 명태를 찾습니다’ 포스터. 명태 보상금은 시가의 10배에서 최근 50만원까지 올랐다. / 조선일보 DB
    동해수산연구소는 2015년부터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뒤로 2년 만에 완전양식 기술을 개발했다. 완전양식이란 인공적으로 수정한 알에서 태어난 물고기가 어미로 자라, 다시 알을 낳는 데 성공했다는 걸 뜻한다. 일본은 2010년 명태 연구를 시작해 2012년 인공 종자 생산에 성공했지만 그 이후로는 진전이 없었다. 변 박사는 "처음 자연산 어미 명태를 구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원래 명태 연구는 2000년대 중반부터 했는데 진전이 거의 없었어요. 살아있는 명태 보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그래서 연구소에서 어민들한테 포상금을 걸었어요. '다 자란 명태를 산 채로 잡아오면 돈을 주겠다'고요. 처음에는 시가의 10배로 시작했는데, 계속 안 잡히니까 1마리당 50만원까지 올라갔죠."

    ―진전이 있었나요.

    "잡아와도 문제였어요. 수온을 낮추고 좋은 먹이를 주는데도 2~3일 만에 죽는 경우가 잦았어요. 명태가 좀 민감한 생선이에요. 잘 놀라기도 하고. 그물에 긁힌 상처와 스트레스 때문인지 오래 못 살았어요." 자연산 명태 700여 마리를 확보했는데, 단 6마리만 생존했다고 한다. 그나마 수컷은 구했지만 어미 명태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2015년 1월 한 어부에게서 어미 명태를 잡았다는 연락이 왔다. 길이 69㎝로, 상처 하나 없이 건강했다고 한다. 이 어미 명태의 53만 개 수정란이 ‘명태 살리기’의 시작이었다.

    이때부터 완전양식 기술 개발에 성공할 때까지 변 박사는 거의 24시간 연구소에서 살았다. 1.5㎜ 크기 수정란이 커가는 모습을 현미경으로 보며 밤을 새웠다. 수정한 지 14일쯤 됐을 때, 부화해서 10㎜, 20㎜, 40㎜로 각각 성장할 때마다 먹이를 다르게 줬다. 연구소는 치어에 줄 먹이를 위해 저온성 먹이생물 배양 장치도 개발했다. “종자(양식용 치어)를 키울 때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여요. 우리나라는 거의 온대성 어류만 양식해 왔고, 이 종자에 줄 동물성 플랑크톤은 28도에서 32도 사이에서 배양해 왔어요. 이 플랑크톤을 그대로 명태에게 주면 플랑크톤이 가라앉아서 물이 오염되죠. 그래서 10도 이하에서 잘 사는 플랑크톤을 배양하는 장치를 만들었죠.” 연구소는 명태 전용 배합 사료도 개발해 특허출원 중이다. 자연산 명태는 부화 후 3년 지나야 산란이 가능한데, 변 박사팀이 키운 명태는 1년 8개월 만에 번식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동해수산연구소 명태연구실 수조에서 헤엄치고 있는 다 자란 명태 / 장련성 객원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변 박사는 명태가 치어일 때부터 2시간마다 한 번씩 이들을 돌본다. / 장련성 객원기자
    ―먹이 주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나요.

    “준비하는 시간까지 합해서 한 번 주는 데 2~3시간 걸립니다. 그렇게 세 끼를 주죠. 소나 돼지 키울 때는 사료통에 그냥 쭉 부어주면 끝나는데, 물고기는 안 그렇죠. 사료를 하나씩, 조금씩 떼서 먹입니다. 수조에 있는 새끼들 골고루 다 먹여야 하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성장 차가 많이 나요.”

    ―물 온도 조절도 어렵다고요.

    “명태 양식은 처음 해보는 거니까 자료가 없어요.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죠. 수온을 점점 낮춰가면서 3, 4단계로 나눠 실험하면서 가장 잘 크는 온도를 찾았어요. 물론 아직 더 연구해야 합니다.” 그는 “잠깐만” 하더니 수조에 가서 명태를 둘러보고 돌아왔다.

    ―얼마나 자주 명태 상태를 확인하나요.

    “길게는 2시간마다 하고요. 평소 그보다 짧게 계속 왔다갔다합니다.” 명태 연구 초창기인 2015년 6월에는 연구소에서 기르던 치어 중 5000여 마리가 한꺼번에 죽은 적도 있었다. 동료 연구원들은 “변 박사가 보름 동안 밥을 제대로 못 먹었다”고 했다.

    “새끼일 때 많이 죽어요. 포유류는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울기라도 하지 물고기는 안 그렇잖아요. 원인이 빨리 밝혀지지도 않고요. 죽은 물고기 해부할 때 마음이 안 좋죠. 그러니까 명태가 죽지 않도록 더 열심히 연구해야죠. 눈 뜨면서부터 잠잘 때까지 계속 잘 있나 확인해야죠.” 위악적(僞惡的)인 질문을 던졌다. “요즘 국산 생태 맛보기 어려운데, 여기서 일하면 생태탕 좀 먹을 수 있습니까?” 변 박사 얼굴이 금세 굳어졌다. “여기서 명태 먹어봤느냐고요? 절대 안 먹죠. 못 먹죠. 정성 들여 키운 걸 어떻게 먹습니까. 죽은 명태는 냉동 보존합니다.”


    “직장에만 성실한 ‘물고기 아빠’”

    이미지 크게보기
    변순규 박사 가족사진. 3년 전 한 수목원에서 찍은 뒤, 이후 명태 연구 때문에 가족사진 찍을 겨를도 없었다고 한다. 왼쪽부터 둘째 아들 민규(20)씨와 아내 장효연(46)씨, 첫째 아들 성준(23)씨, 변 박사. / 변순규 박사 제공
    변 박사는 1963년 바다에서 한참 떨어진 덕유산 끝자락 경남 거창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농사를 지었다. 2남2녀 중 둘째로, 형제 중 현재 바다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변 박사뿐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 생물 과목에 관심이 많아서” 1982년 국립부산수산대(현재 부경대) 자원생물학과에 입학했다. 1989년 국립수산과학원에 들어갔다. “딱 그해까지 학사 출신이 과학원에 들어왔어요. 그 뒤부터 석사 출신이 들어왔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박사만 뽑았죠. 제가 재수를 했으면 자격 미달로 과학원 못 들어왔을 거예요.” 변 박사는 과학원에 다니면서 석·박사 학위를 땄다.

    변 박사의 첫 부임지는 전라남도 여천(현 여수)에 있던 배양장이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에서 양식 붐이 일었어요. 전국에 양식 연구하는 배양장이 11곳 있었죠. IMF 이후 줄어서 지금은 4군데 정도 있어요.”

    변 박사는 이후 전남 완도, 경남 통영, 경북 울진, 경남 남해 등을 돌며 물고기 인공 종자 생산 연구를 했다. 그는 1997~98년 민어 알을 받는 데 성공했고, 2004년 국내 최초로 강도다리 양식을 해냈다. 아내 장효연(46)씨는 “1993년 결혼하고 나서 남편은 늘 학생처럼 살았다”고 했다. “공무원은 땡 출근해서 땡 퇴근하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거의 매일 해 뜨기 전 연구소에 나가서 밤 12시쯤 들어왔어요. 남편의 성실함에 반해서 결혼했는데, 직장에만 너무 성실하더라고요. 저희 아들 둘(23·20) 중 첫째가 어릴 때 아빠에 대한 시를 썼는데 제목이 ‘고기 아빠’였어요. 첫째가 정말 많이 아팠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남편이 똑같이 출·퇴근했어요. 제가 더 이상 못 참고 ‘당신만 바쁘냐’고 화를 냈더니 이러는 거예요. ‘고기 키우는 게 아기 키우는 것하고 똑같다. 아기 한 명에게는 아빠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지만 고기 수천 마리한테는 나밖에 없다’고요.”

    변 박사에게 “식구들한테 미안할 때가 잦았겠다”고 하자 “아이들 크는 모습을 잘 못 봐서 미안하고, 그렇죠 뭐”라고 했다. 이번에도 동료 연구원들이 나섰다. “변 박사네 아들들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아빠래요. 둘째는 올 1월에 변 박사가 복무했던 강원도 최전방 12사단 수색대대에 자원입대했어요. 아빠가 걸어본 길을 따라 가보겠다고요.”

    변 박사는 예전엔 술·담배도 잘하고 노래방 가서 노래도 잘 불렀다고 한다. 2004년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마저 다 끊고 연구소와 집, 교회만 다니고 있다고 한다.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자 변 박사는 “고기 키우는 재미로 산다”고 했다.

    이날 저녁 동해수산연구소 양식산업과는 고깃집에서 회식했다.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서는데 변 박사를 비롯한 모든 연구원이 발가락 양말을 신고 있었다. 바닷물에서 항상 일해 무좀에 걸린 탓이다. 연구원들은 ‘명태’로 건배사를 했다. “명! 명예롭고! 태! 태양처럼 빛나는 내일을 위하여!” 변 박사는 맹물 따른 소주잔을 원샷했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변순규 박사(오른쪽)가 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공무원상 시상식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옥조근정훈장을 받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변순규 박사(오른쪽)가 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공무원상 시상식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옥조근정훈장을 받고 있다./ 인사혁신처 제공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