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독버섯 가짜뉴스… 순진해서 낚이나, 뻔히 알면서 퍼나르나

    입력 : 2017.03.25 03:02

    인격 살인부터 국가 간 불화까지… 근절할 방법은?

    미국 대선마저 좌지우지?
    "클린턴이 아동 성매매""교황이 트럼프 지지"… 소셜미디어 통해 범람, 진짜 뉴스보다 더 강력

    지난 2월 7일 이모(81)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영태의 재판정 발언이 일파만파 한국 최대의 시사성 발언이 터졌다. 오늘은 손학규 조카가 고영태임이 밝혀졌다'는 글을 올렸다. 같은 날 이 글을 본 네티즌은 이씨의 페이스북 화면을 캡처해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비판을 받아왔던 고영태씨가 야당 전 대표의 조카였다는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최순실 게이트 배후는 야당 대표' '정말 몰랐던 내용' 등의 반응을 보였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유사한 내용의 글을 퍼 날랐다. 이 내용은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그러나 손 전 대표와 고씨는 친인척 관계가 아니었다. 신고를 받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추적에 나섰고 이 내용을 최초로 퍼뜨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씨를 적발해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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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이철원 기자

    대선 가까워지면서 가짜뉴스 기승

    가짜뉴스 범람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가짜뉴스(fake news)가 대선을 앞둔 국내에서도 큰 골칫거리로 떠오른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검찰, 경찰도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가짜뉴스는 뉴스 형식을 빌려 유포되는 허위 사실이나 거짓 정보를 말한다. 아직 법적으로 정립된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특정한 의도를 갖고 뉴스의 공신력을 빌려 잘못된 정보를 퍼뜨린다는 측면에서 '루머'나 속칭 '찌라시'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졌고 그만큼 피해도 크다.

    작년 10월 27일 한 네티즌은 당시 미국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의 얼굴 사진과 함께 "누가 여성 대통령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한국을 보게 하라"는 TV화면 자막처럼 보이는 글을 합성한 사진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이 네티즌은 사진 위에 작은 글씨로 '트럼프가 이렇게 말하면 선거 이기지 않을까'라는 내용을 남겨 실제 뉴스가 아님을 암시했다. 하지만 이 사진을 본 미국의 한 교포는 '망신, 망신 이런 망신이 없다. 오늘 트럼프가 연설 중에 여자 대통령의 끝을 보려면 한국의 여자 대통령을 보라 한다. 인간 막장 트럼프도 조롱한다'라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남겼다. 교포는 네티즌이 올린 사진을 TV장면을 캡처한 것으로 판단한 듯했다. 이후 인터넷 게시판과 소셜미디어에는 트럼프가 진짜 그런 연설을 한 것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국내 한 방송사는 트럼프가 유세에서 "여성 대통령의 끝을 보려면 한국의 여성 대통령을 보라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고, 다른 방송 역시 그 내용을 받아 보도했다. 일부 국회의원은 "오늘 아침에 미국 대통령 후보 연설에서 '여자 대통령의 끝을 보려면 한국 대통령을 보라'고 했다. 대한민국 국제 망신이다.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트럼프 연설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가짜뉴스에 네티즌, 언론, 정당이 모두 속아 넘어가 한바탕 홍역을 치른 것이다.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유력 후보들을 겨냥한 가짜뉴스가 많아지고 있다. '북한 공산당 인민회의 흥남지부장 아들이다' '엘시티 건축부지 용도 변경의 주범이다' '아방궁 호화주택을 건설 중이다'는 등의 근거 없는 뉴스성 글이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에 집중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지난달 1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가짜뉴스를 언급하며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반 전 총장은 "저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뉴스로 인해 정치 교체 명분은 실종되고 오히려 제 개인과 가족, 그리고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됨으로써 국민에게 큰 누를 끼치게 됐다"고 했다.

    각 대선 주자 캠프들은 전담팀까지 꾸려 가짜뉴스에 대응하고 있다. 지지율 1위를 기록 중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측은 시민 신고 홈페이지를 개설한 지 18일 만에 가짜뉴스를 포함한 유언비어에 대한 신고가 5000건을 넘어섰다고 22일 밝혔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측도 언론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동시에 법률자문단을 통한 법적 대응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신고 접수 내용을 보면 과거 대선에도 유포됐던 흑색선전이나 루머가 많다"면서도 "뉴스나 기사 제목 형식을 띤 가짜뉴스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지구촌 곳곳 가짜뉴스로 홍역

    가짜뉴스는 지난 미국 대선에서 큰 이슈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뉴스 덕에 힐러리 클린턴을 이겼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작년 12월 3일 미국 워싱턴 중심가에서 북서쪽으로 6㎞가량 떨어진 피자가게 '코메트 핑퐁'에서 20대 남성이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인명 피해가 나진 않았지만 이 남성이 밝힌 범행 동기가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는 경찰에서 "피자게이트를 직접 조사하고 아이들을 구출하러 간 것"이라고 했다. 그가 언급한 피자게이트는 미국 대선 과정에서 널리 확산된 가짜뉴스 중 하나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가 워싱턴 인근 피자가게 코메트 핑퐁 지하실에서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내용이었다. 미국 대선 기간 중엔 '프란치스코 교황, 도널드 트럼프 후보 지지' '힐러리 클린턴, 이슬람국가(IS)에 무기 판매' '클린턴 재단, 1억3700만달러어치 불법 무기 구입' 등의 뉴스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널리 유포됐는데 모두 조작된 가짜뉴스였다.

    가짜뉴스는 진짜 뉴스보다 파급력이 큰 경우가 많다. 미국 온라인매체 버즈피드에 따르면 작년 8월부터 미국 대선일인 11월 8일 사이 가장 많이 언급된 상위 20건의 진짜 뉴스에 대해 페이스북에서 이뤄진 공유·의견표명·댓글달기 등은 736만7000회로 집계됐다. 하지만 같은 기간 '피자게이트'와 같은 가짜뉴스에 대한 공유·의견표명·댓글달기 등은 무려 870만1000회에 이르렀다. 소셜미디어에선 가짜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훨씬 큰 파급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가짜뉴스는 세계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독일과 러시아는 올해 초 가짜뉴스 때문에 위기 상황까지 갔다. 베를린에 사는 러시아 태생의 소녀가 등굣길에 납치됐으며, 무슬림 난민들로부터 강간당했다는 소셜미디어상의 이야기가 발단이었다. 가짜뉴스로 재가공된 이 이야기는 독일 경찰에 의해 소녀의 거짓말로 확인됐다. 독일에 사는 러시아인들이 크게 반발하고, 러시아에선 "독일이 논란거리를 카펫 밑으로 쓸어 넣어 버렸다"고 비난하는 등 양국 외교장관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또 독일에선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 아돌프 히틀러의 딸이며, 이 같은 사실이 슈타지(동독 비밀경찰) 기밀문서에서 드러났다는 가짜뉴스로 나라가 들썩였다.

    가짜뉴스에 속아 이웃 나라에 경고메시지를 보낸 장관도 있다. 작년 12월 카와자 아시프 파키스탄 국방장관(67)은 'AWD뉴스'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파키스탄이 시리아에 지상군을 파병하면 이스라엘은 파키스탄을 핵 공격으로 파괴하겠다고 모셰 야알론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말했다"는 기사를 봤다. 아시프 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주제넘게 핵 보복을 하겠다고 협박한다. 이스라엘은 파키스탄도 핵 보유국이란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이 장관이 봤다는 기사는 가짜뉴스였다.

    작성자는 물론 유포자까지 엄벌해야

    중앙선관위와 검찰, 경찰은 선거 준비 기간이 짧은 이번 대선에 비방·흑색선전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고 전담 조직을 만들어 대응하고 있다. 특히 다른 흑색선전과 달리 가짜뉴스에 대해선 엄정한 처벌을 다짐하고 있다. 지난 17일 김수남 검찰총장은 전국 공안부장 검사대회에서 "이른바 가짜뉴스는 언론 보도를 가장해 사회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전파돼 표심을 왜곡할 위험성도 높다"며 "가짜뉴스의 최초 작성자는 물론 악의적, 조작적으로 유포한 사람도 끝까지 추적해 엄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와 함께 다양한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황창근 홍익대 법대 교수는 "가짜뉴스는 허위사실 표현에 대한 기존 법규로도 처벌이 가능하다"면서 "특히 언론의 형식과 언론을 사칭한다는 관점에서 '가짜뉴스'를 처벌하는 법을 따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가짜뉴스가 유통되는 경로인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 사업자에 대해 책임을 부여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수종 언론중재위원회 연구팀장은 "가짜뉴스 현상의 본질은 허위 뉴스의 내용이나 형식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신속하게 전파되는 유통 방식에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면서 "인터넷사업자가 자사 플랫폼에 유통되는 문제 글을 24시간 내에 삭제하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는 대책을 발표한 독일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독일 정부는 가짜뉴스와 증오 표현을 방치하는 소셜미디어 업체에 대해 최대 5000만유로(약 600억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입법 절차에 착수했다. 일부에선 가짜뉴스 여부를 신속하게 판별할 수 있는 민간 중심의 팩트 체크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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