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만 월 900만원… 고가 항암신약, 건보 안되나요?

    입력 : 2017.03.24 03:04

    [癌환자들, 비용 감당못해 치료효과 뛰어난 약 못쓰고 발만 동동]

    - 면역·표적 항암제 '그림의 떡'
    폐암 말기 환자 20~30%서 암덩어리 줄어드는 등 약효…
    상당수가 '메디컬 푸어' 전락

    - 건보 재정악화 우려에 적용 지연
    의료계 "치료받을 기회 늘려야", 정부 "항암 신약 개선안 곧 마련"

    전남 지역 섬에서 홀로 사는 최모(71)씨는 폐암 환자다. 2015년 말 폐암 진단 당시 이미 암이 퍼져 말기 상태였다. 수술도 불가능했다. 최씨는 치료를 포기하고 인생을 정리하려 했다. 그러나 서울에 있는 두 남매가 아버지를 설득했다. "면역항암제라는 항암 신약을 시도해보자"고 한 것이다. 최씨가 3주에 한 번 서울 대학병원을 찾아 면역항암제 주사를 맞자, 폐암이 줄기 시작했다. 다 죽어가던 최씨가 멀쩡히 돌아다니자 섬마을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씨는 지금 호스피스에서 생의 마감을 앞두고 있다. 약값 부담으로 면역항암제 투여를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달에 약 900만원 약값을 두 남매가 갹출해 6개월 넘게 댔으나, 감당할 수 없었다. 최씨의 딸은 "약값 부담만 작아도 도중에 포기하진 않았을 텐데…"라며 "자식으로서 죄책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항암 신약은 그림의 떡?

    최근 면역항암제, 표적항암제 등 다양한 항암 신약(新藥)이 등장했지만, 고가의 약값으로 암 환자들 사이에서 최씨 같은 상황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항암 신약을 쓰자니 비용 감당이 안 되고, 안 쓰자니 생명 연장 효과가 있는 신약을 눈앞에 두고 아쉬워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항암 신약은 아직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환자가 약값 전액을 내야 한다. 면역항암제는 보통 한 달에 800만~900만원, 표적항암제는 한 달에 600만~700만원 든다.

    면역항암제는 환자의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공격하는 새로운 개념의 항암제다. 국내에는 지난해 초 폐암과 피부암인 흑색종에 사용 승인을 받았다. 폐암 말기 환자의 20~30%에서 폐암이 줄어들거나 암세포 성장이 멈추는 효과가 있다. 부작용도 거의 없어 일반인처럼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폐암 말기 환자 김모(67)씨는 기존 항암제에 내성이 생겨 치료를 포기했다가 표적항암제 신약을 투여받고 있다. 표적항암제는 암을 일으킨 특정 유전자 변이를 차단하는 약물이다. 김씨는 "암이 확연히 줄어들어 산책하러 다닐 정도로 호전됐다"면서도 "한 달에 약값이 700만원 정도 들어 언제까지 이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스트(소화기종양) 환우회 양현정 대표는 "항암 신약 치료를 시도조차 못 하는 암 환자도 많다"면서 "이들은 항암 신약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초조한 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난항 겪는 건강보험 적용

    현행 규정상 항암제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환자는 약값의 5%만 낸다. 항암 신약은 워낙 고가이다 보니 약값의 95%를 건보에서 대면 재정에 큰 부담이 돼 건보 적용이 지연되고 있다. 면역항암제의 경우 환자의 20~30% 정도에 효과가 있어 일괄적으로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환자 단체와 의료계에서는 우리나라가 항암 신약 건보 적용에 지나치게 까다롭다고 주장한다. 우선, 항암 신약이 국내에 도입된 후 건보가 적용되기까지 평균 601일 걸리는데, 이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꼴찌 수준이다. 최근 수년간 항암 신약 건보 적용률은 29%로 OECD 평균(62%)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국다발성골수종(혈액암) 환우회 백민환 회장은 "약값을 대려고 전세를 월세로 바꾸면서까지 치료받다 메디컬 푸어(medical poor·치료비 부담으로 생긴 가난)로 전락한 채 세상을 떠나는 환자들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암 전문의, 환자단체 등이 모인 한국암치료보장성 확대 협력단은 항암 신약 건강보험 적용에 대한 조속한 사회적 합의를 촉구한다. 협력단의 김봉석 중앙보훈병원 기획조정실장은 "항암제에 대한 본인 부담금을 일률적으로 5%로 정하지 말고 항암제 종류에 따라 20%, 50% 등으로 차등해 환자들이 치료받을 기회를 늘려야 한다"면서 "담배에서 오는 건강증진기금 일부를 메디컬 푸어를 막는 특별재정지원금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곽명섭 보험약제과장은 "정부로서는 건보 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조만간 항암 신약 문제에 대한 개선안을 만들어 건보 적용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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